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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초보엄마의 억장이 무너지다···아가의 원인 모를 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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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열은 떨어뜨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그 원인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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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엄마 잡학사전-41] "전형적인 감기네요. 약 먹으면 열도 떨어지고 금세 나을 거예요." 밤새 열이 난 둘째를 데리고 소아과를 찾았을 때 의사는 감기라고 했다. 약을 잘 챙겨 먹이면 미열로 바뀌었다 곧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날 밤 39.5도까지 열이 올랐다. 다음날 다시 소아과를 찾았다. 아이가 열이 날 때면 나는 매일 소아과에 간다. 아이의 상태가 수시로 바뀌거니와 가급적 밤에 응급실에 가지 않기 위해서다.

의사는 심한 감기가 아닌데 열이 계속 오르는 게 미심쩍었는지 해열 노력을 해본 후에도 안 되면 응급실을 가거나 다음날 상급종합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다른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날 밤에도 39.5도까지 열이 올랐으나 해열제를 여러 번 먹은 덕에 다음날에는 컨디션을 회복하는 듯했다. 종합병원 외래진료를 받기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예약이 꽉 차 진료를 받을 수 없었다. 응급실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내게 친정엄마는 "밤에 가서 고생하느니 낮에 가면 덜 붐비지 않겠느냐"며 응급실에 가보자고 했다. 한낮에 응급실에 가긴 처음이었다.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아이는 방긋방긋 웃으며 평상시와 다를 바 없었다. 열을 재보니 정상이었다. 응급실에 가면 너덧 시간은 고생하고 나와야 하는 것을 알기에 망설여졌다. 엄마는 "기왕 병원에 온 거 확실하게 하고 가자"며 들어가자고 했다. 하루종일 일하고 온 사위가 밤에 응급실에서 고생하지 않게 하려는 엄마의 깊은 뜻을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낮 12시에 응급실에 들어간 우리는 오후 6시가 다 돼서야 나올 수 있었다. 피검사, 소변검사, 인플루엔자검사 등 각종 검사를 다 했다. 기다리는 동안 수액도 맞았다. 소변검사 결과가 애매해 요로에 관을 삽입해 다시 검사를 하기도 했다. 초보 의사의 잇단 관 삽입 실패에 나는 억장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의사는 일단 항생제를 먹고 3일 후 소변검사 결과 확인차 다시 병원에 오라고 했다.

응급실에 다녀오면 어찌됐든 열은 해결이 된다. 서너 번 응급실에 다녀온 경험에 의하면 그렇다. 다음날 온 몸에 열꽃이 폈다. 이제 괜찮겠지, 다시 병원에 갔다. 간호사가 심각했다. 입원해야 한단다. 요로감염으로 추정되나 자세한 건 정밀검사를 해봐야 안단다. 삼겹살이나 구워 먹으려던 우리의 평온한 주말은 순식간에 절망으로 바뀌었다. 생후 8개월 된 아이에게 입원이라니, 하루에도 서너 번 가녀린 팔에 주삿바늘을 꽂는 간호사가 속절없이 미웠다.

의사는 요로감염은 6개월 전후 아이들에게 많이 발생하는 질병이라며 대개 대변의 대장균을 통해 감염된다고 설명했다. 아무리 엉덩이를 깨끗이 닦아도 감염될 수 있다며 그저 우연히 걸렸다고 생각하면 받아들이기 쉬울 것이라고 했다. 원인 모를 고열이 계속된다면 의심해봐야 하는 질병으로 단순히 세균에 감염된 것인지 아니면 소변이 역류하는 등 기능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초음파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항생제 치료를 통해 세균이 완전히 없어지면 그때 퇴원할 수 있다고 했다.

치발기와 장난감 하나로 나흘을 병원에서 버티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환경이 바뀐 데다 수시로 주삿바늘을 꽂아대니 아이는 자주 울었고 12㎏에 육박한 아이를 나는 계속 안고 있었다. 잠자리가 바뀌어서 인지 새벽에 계속 우는 아이를 안아주느라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아이 혼자 두고 화장실에 갈 수 없어 물을 많이 마실 수도 없었다. 장난감에 의존하지 않고 아이와 하루종일 눈 마주치며 놀았던 것은 유일하게 좋았던 점이다.

응급실에 빨리 와 여러 검사를 하고 항생제를 먹었던 게 요긴했는지 아이는 나흘 만에 퇴원했다. 통상 요로감염에 걸리면 열을 떨어뜨리고 항생제 치료를 하는 데 일주일이 걸린다고 한다. 다른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수도 있다는 소아과 의사의 힌트도 긴요했다. 지인은 2주째 열이 나는 아이에게 계속 감기약만 처방해준 의사 때문에 요로감염 치료 시기가 늦어져 엄청 고생했다. 열은 떨어뜨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그 원인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배가 홀쭉해져 퇴원한 아이는 다시 어린이집에 다닌다. 아프고 나니 부쩍 더 큰 것 같다. 별것 아닌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해 그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낄 수 있는 나흘이었다.

[권한울 프리미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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