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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남북 정상이 먹는 달고기, 벌써 품절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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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남북정상회담 만찬’으로 ‘친절한 기자’에 오랜만에 등판한 음식문화 담당기자 박미향입니다. 27일 역사의 새 장을 연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처음 꺼낸 말은 ‘평양냉면’이었습니다. 그는 “어렵사리 평양에서 평양냉면을 가져왔다”며 “(문 대통령이) 편한 마음으로 좀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다”고 말했지요. 시인 백석이 사랑한 슴슴한 평양냉면이 역사적인 회담의 문을 열었군요. (이 효과로 장안의 내로라하는 평양냉면집들이 이날 인산인해였답니다.)

‘한반도 비핵화’ 등 큰 의제만큼이나 만찬 음식이 화제입니다. 제면기까지 들고 온 옥류관 수석요리사가 선보인 냉면 맛이 궁금해지는군요. 이미 ‘옥류관 요리사가 말하는 평양냉면 숨겨진 맛 비결’(4월7일 기사)에서 그 맛에 대해 탐문해봤습니다. 옥류관에서 일한 적 있는 탈북 요리사 윤종철씨가 말한 옥류관 냉면은 메밀과 감자녹말을 ‘4 대 6’으로 섞는다는군요. ‘8 대 2’ 배합을 정설로 떠받든 남쪽 사람들에겐 신기할 따름입니다. 육수엔 꿩을 우린 국물이 들어간다는군요.

만찬에 평양냉면만 오른 건 아닙니다. 민어해삼편수는 우리 조상들이 더운 여름에 먹는 네모난 모양의 귀한 만두입니다. 속 재료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신안 가거도에서 잡은 민어와 해삼을 넣었다는군요. 민어와 해삼은 지금이 제철입니다. 제철 음식을 쓰는 것만큼 최고의 조리법도 없지요. 사실 민어는 가거도가 아니라 임자도산을 으뜸으로 칩니다. 새우가 잘 자라는 곳이 바로 임자도인데, 민어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가 새우랍니다. 큰 민어 파시가 열리던 일제강점기엔 흥청망청 돈이 물결쳐 기생들이 원정 올 정도였다고 합니다. 인천 인근 굴업도에도 큰 파시가 열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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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만찬에 쓰일 만찬 메뉴가 공개됐다. 사진은 부산의 대표적인 생선인 달고기 요리는 유럽에서도 고급 생선으로 분류되며 북한 해역에서는 잡히지 않는 고기로 알려져 있다. 부산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문재인 대통령의 기억과 유럽 스위스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김정은 위원장의 기억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음식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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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구운 달고기구이도 올랐더군요. 우리에겐 낯선 달고기는 서양에선 흔한 생선입니다. ‘존도리’라 부르죠. 한국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유년을 보낸 부산이 이 음식의 고향입니다. 지금이 제철인데, 1960~70년대엔 그저 가난한 이들이 먹던 서민의 생선이었습니다. 그들은 달고기로 포를 떠서 제사상에 올리곤 했죠. 팔기 시작한 지 고작 20여년도 안 됩니다.

달고기는 양식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건강한 식재료로 이유식을 만들고 싶은 주부들이 몇 년 전부터 찾기 시작했죠. 거기다 서울의 고급 서양식 레스토랑의 유명 요리사들까지 가세했습니다. 서양식 ‘존도리 스테이크’를 메뉴로 내기 시작한 거죠. 이렇게 서서히 이름이 나기 시작한 게 고작 6~7년 전입니다.

그런데 큰일 났습니다. 이제 먹기 더 힘들어질 것 같습니다. 부산의 달고기 판매 전문점 ‘자갈치창용상회’ 주인 김경희(73)씨가 전해 온 소식은, 정상회담 메뉴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경매가가 예년에 비해 7~8배 올랐다는군요. 김씨는 그동안 1㎏을 2만원에 팔아왔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걱정입니다. 이번 만찬엔 유독 생선이 많습니다. 도미찜, 메기찜도 있더군요.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광주전남연구원 김준 연구원은 바닷물고기가 갖는 상징성에 주목합니다. 그는 “민어는 남북을 오가는 생선입니다. 땅에 가둬 놓고 사육하는 소나 돼지와 달리 경계를 넘나드는 게 물고기”라고 말합니다.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이번 정상회담의 역사적 의미가 만찬에 투영된 것이라고 (저 혼자) 해석합니다.^^

참, 뢰스티를 빼놓을 뻔했네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배려해 낸 음식입니다. 그가 유년을 보낸 스위스의 전통 음식이죠. 뢰스티는 우리네 감자전과 비슷한데, 감자를 삶아 채 썬 뒤에 두툼하게 모양을 잡아 익히는 음식입니다. 위에 소시지, 치즈 등을 올려 먹기도 합니다. 유럽의 감자는 우리네 감자와 달리 수분이 적어 삶아 썰어도 길쭉한 모양이 무너지지 않아요. 우리식으로 해석했다니 그 맛이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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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도, 봉하마을, 부산, 스위스. 만찬 음식마다 지명이 있군요. <왜 맛있을까>를 쓴 옥스퍼드대학 통합감각연구소 소장 찰스 스펜스는 식탁의 즐거움은 마음에 있지, 입에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추억이 묻어난 곳의 먹거리를 가져와 차린 만찬은 비둘기 훨훨 나는 평화의 세상으로 우리를 이끌 것으로 보이는군요.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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