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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테크 트렌드] [2] 인공지능으로 인간 감정 이해하는 로봇 등장 "30년 뒤엔 인간·로봇이 결혼식도 올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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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로봇

2년 전 미국의 가정용품 판매점 로즈(Lowe's)의 샌프란시스코 매장에서 쇼핑 도우미 로봇인 '로봇(LoweBot)'이 6개월 만에 퇴출됐다. 이 로봇은 고객에게 다가가 사고 싶은 제품을 물어보고 물건 위치를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이던 커피를 내려주는 로봇 '카페X'도 지금 폐업 위기다. 처음엔 신기해하던 사람들이 무뚝뚝하고 사무적인 로봇에 관심이 시들해졌기 때문이다.

1999년 등장한 일본 소니가 만든 애완견 로봇 '아이보'(AIBO·짝꿍이라는 일본말)도 그랬다. 출시 당시 20분 만에 3000대가 매진돼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가 그해 최고 인기 상품으로 선정할 정도로 인기였다. 하지만 이후 3~4년간 누적 판매량 15만대에 그쳐 단종(斷種)됐다. 인간과 '감정 소통'할 능력이 없었던 탓이다. 인간이 사용하는 50개 단어를 이해해 '멍멍' 소리로 반응하고 쓰다듬으면 귀와 꼬리를 흔들 뿐, 아이보는 이용자에게 자동화된 기계일 따름이었다.

그런 '아이보'가 12년 만인 올해 부활했다. 신제품 '아이보(aibo:소니는 최신 모델은 영문 소문자로 표기함)'는 대당 19만8000엔(약 200만원)의 고가인데도 구매 대기자가 너무 많아 추첨을 통해 팔 정도다.

개발자인 가와니시 이즈미(川西泉)씨는 "인간과의 친밀감, 유대감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인간의 감정 변화를 데이터화했다. 예를 들어 주인이 밤 10시쯤 귀가해 붉은빛이 나는 얼굴색으로 입꼬리가 올라가며 아이보의 머리를 툭툭 쳤다. 이럴 때 주인은 어떤 감정 상태일까. 아이보는 이를 파악하기 위해 주인의 얼굴·음성은 물론 귀가 시간, 말 거는 횟수, 쓰다듬는 패턴까지 모두 데이터로 바꾼다.

개발사인 소니는 매일 수천~수만대의 아이보가 24시간 수집한 방대한 데이터양(量)을 클라우드(가상 저장 공간) 한곳에 모아 '아이보의 가상 두뇌'를 운영한다. 한 대의 아이보는 '바둑이'와 같은 본인 이름을 인지하고 개별 주인을 알아보는 개별 로봇이지만, 이런 모든 아이보의 두뇌는 하나로 이어져 통합돼 있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 감정 로봇(Emotional Robot)은 자동화 기계들이 인간의 삶의 공간으로 본격 들어오는 관문이다. 인공지능·빅데이터·클라우드 기술 같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들이 집약된 종합 기술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미국 어펙티바(Affectiva)는 인간의 표정을 보고 감정 상태를 파악하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스라엘의 비욘드 버벌(Beyond Verval)은 억양·어조를 분석해 목소리로 불안·흥분·분노 등을 알아내는 소프트웨어를 각각 개발 중이다. 일본의 코코로SB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표면적 의미와 본심을 구분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인간의 뇌를 분석해 로봇에 정보를 주려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흥미로운 것은 동물의 감정을 읽는 연구보다 인간의 마음을 알아내는 연구 개발이 더 쉽고 빠르게 진행된다는 점이다. 인공지능이 학습할 인간 감정 데이터양이 동물의 데이터양보다 수억 배 이상 많은 데다 수집도 쉽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인간과 감정 로봇 간의 사랑도 조만간 현실화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영국의 뇌과학자 데이비드 레비 박사는 "2050년 이전에 인간과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의 결혼이 일상적으로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감정로봇의 진화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우리가 마음을 열고 그들과 감정을 공감하라는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감정 로봇에 친구도 연인도 뺏기기 전에 말이다.

[성호철 산업2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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