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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자녀 주주로 법인 세워 원자재 구매 ‘통행세’ 쌓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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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고액 편법 증여 ‘미성년 금수저’ 세무조사

고액 예금·주식 보유 151명…고가 아파트 전세·취득 77명…소득 없는 5세 유아 등 포함

내부 정보 알고 미리 증여일감 몰아주기·주식 경매도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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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회장인 ㄱ씨는 수조원 규모의 개발사업이 체결돼 회사 주가가 오를 것으로 보고, 어린 손주에게 주식을 미리 증여했다. 이후 개발사업이 시행되면서 주가는 급등했고 손주는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었다. ㄱ씨는 회사 내부정보를 이용, 변칙 증여를 통해 증여세를 덜 냈을 뿐 아니라 경영권 편법 승계까지 준비한 것이다.

기업가나 고액 자산가들이 세금을 회피하고 자녀에게 부를 물려주는 방식이 갈수록 정교해지고 지능화되고 있다. 국세청은 소득 없이 고액 예금을 보유하거나, 고가 아파트를 취득한 미성년자 등 228명과 40개 법인에 대해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24일 밝혔다.

특히 ‘금수저’라 불리는 미성년자의 상속 재산을 대상으로 국세청이 기획 세무조사를 벌이는 것은 처음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최근 미성년자의 고가 아파트 취득이 사회 이슈가 됐고 공정한 세금 부담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도 높아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사 대상에는 소득이나 다른 자금 원천이 없는데도 고액의 예금이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151명과 고가의 아파트에 전세로 거주하거나 취득한 이력을 갖고 있는 77명이 포함됐다. 77명 중에는 아버지에게서 받은 17억원으로 서울 성동구의 아파트를 산 20대, 용산 아파트 전세금 9억여원을 부모에게서 받은 대학 강사도 있다.조사 대상의 상당수는 미성년자이며 30대 청년층에서부터 5세가량의 유아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이들이 부모에게서 예금·주식·부동산 등을 변칙적으로 상속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국세청은 또 차명주식을 이용하는 등 편법적인 자본거래로 세금을 내지 않고 경영권을 승계한 혐의를 받고 있는 40개 법인에 대해서도 정밀 조사 중이다. 이름을 알 만한 대기업부터 중소·중견기업까지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이 이날 공개한 탈세 사례를 보면 부의 상속 과정에서 기업 내부정보 활용, 일감 몰아주기, 주식 경매 등 다양한 방식이 동원됐다. 그룹 회장 ㄴ씨는 임직원에게 명의신탁한 주식을 임직원이 퇴직하거나 사망했을 때 다른 임직원 혹은 친·인척에게 다시 명의신탁하는 수법으로 수십억원대의 증여세를 탈루했다. 이후 명의신탁한 주식을 시가 경매에 붙여 가격을 낮춘 뒤 아들 소유의 법인에 양도했다. 국세청은 ㄴ씨가 주식 가격조작을 거쳐 이뤄진 편법 승계에서 양도세와 법인세를 내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인 ㄷ씨는 미성년 자녀를 주주로 하는 법인을 설립하고 자사의 원자재 구입은 이 법인을 거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ㄷ씨는 미성년 자녀가 취득한 이익을 신고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고액 자산가의 며느리 ㄹ씨는 시아버지에게서 증여받은 5억원으로 고금리 회사채를 사들인 다음 어린 자녀 명의의 계좌에 집어넣는 방식을 사용했다.

국세청은 금융자산을 보유한 미성년자에 대해 증여자의 사업소득 탈루 여부 등 자금 조성경위 및 적법성에 대해서도 조사할 예정이다. 법인을 이용한 변칙거래나 경영권 편법 승계 등의 혐의도 엄중하게 검증키로 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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