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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이번만은…" 임진각 망배단서 두손 모은 실향민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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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정상회담 D-2 ◆

11년 만의 남북정상회담 소식에 피어난 희망은 초속 3~5m의 다소 강한 바람에 실려 시민들을 남한의 북단으로 올려 보냈다. 4·27 남북정상회담을 사흘 앞둔 24일 오전 임진각, 경기도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 도라산역 등 북과 가까운 지역은 희망을 품은 내·외국인으로 북적였다.

군사분계선에서 북한 땅과 불과 7㎞ 떨어진 임진각 국민관광지에서는 이른 오전이었음에도 많은 나들이객을 만날 수 있었다. 차량 1500여 대를 댈 수 있는 주차장이 오전임에도 절반가량 차 있었다. 교인들과 외국인 관광객으로 이루어진 단체관람객들은 관광버스에 나뉘어 임진각을 찾았고, 가족 단위 방문객의 차들도 시간이 갈수록 주차장을 가득 메웠다.

실향민 가족을 곁에 둔 시민들은 그리움으로 맺힌 할머니·할아버지의 한을 달래려는 듯 임진각과 통일전망대를 찾았다. 1985년 건립된 이래 명절마다 고향을 찾지 못한 실향민 500만명의 그리움을 오롯이 받아낸 임진각 망배단 앞에서 기자는 청주에서 올라온 김 모씨(28) 일가 9명을 만날 수 있었다. 6·25전쟁 당시 월남한 증조할머니 영향으로 어릴 때 임진각을 자주 찾았다는 김씨는 "10년 만에 임진각을 다시 찾았다"고 수줍게 말했다. "5년 전에 돌아가신 증조할머니는 고향을 끔찍이 그리워하시면서도 북한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고백한 김씨는 "통일까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회담으로 남북한 사이에도 평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망배단 앞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1600여 년 전 백제와 고구려가 100년 전투를 벌였던 파주시 탄현면 오두산 통일전망대에도 이날만큼은 평화와 희망의 분위기가 맺혀 있었다. 전망대를 찾은 일산 주민 배영숙 씨(67)는 "예전에도 이 통일전망대를 여러 번 찾아봤지만 이번에는 마음이 조금 다르다"며 "같은 민족끼리 같이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세상이겠냐"고 들떠 있었다. 배씨는 이어 "피란길에 생후 6개월 된 오빠가 죽고 어머니가 나를 임신하셨다"며 "우리 세대 누구나 하나쯤은 지닌 그런 아픔이 더 이상은 없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남편과 전망대를 찾은 주 모씨(68)는 회담을 통해 더 강한 대한민국을 꿈꾸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미국·중국 같은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통일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망원경을 통해 보니 이렇게 가까운 거리를 수십 년째 못 밟고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고 말했다.

이날 내국인만큼 많았던 해외 관광객들 역시 평화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는 듯했다. 미국인 피터슨 씨(47)는 "우리 국가의 군인들이 이 나라에 있는 것만으로 한국의 평화는 중요한 문제"라며 "총과 칼을 통한 문제 해결은 이 시대의 방법이 아니다"고 말했다. 호주에서 온 어맨다 그레이엄 씨(52)는 "한국에서의 일정이 하루밖에 안 되는데 시기가 시기인지라 임진각을 찾았다"며 "김정은 정권을 완전히 믿을 수 없지만 한반도에도 호주같이 평화로운 분위기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웃었다.

삼엄한 군의 검문검색을 거쳐 닿은 경의선 남측 최북단 도라산역에도 남북 화해의 바람이 불었다.

파주시 문산읍에 살면서 10년 넘게 이곳 상점에서 일했다는 50대 박 모씨는 "휴전선 근처라 웬만한 사건에는 우리(주민들)도 동요하지 않는데, 매일같이 퍼붓던 남북 확성기들이 오늘 아침부터 잠잠해진 것을 보니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하루에 한 번 도라산역에 정차하는 코레일 열차에는 승객이 많아야 130여 명 탄다. 이날도 3분의 2가량 폐쇄됐던 도라산역은 훗날 이곳에서 시베리아, 중국을 향해 떠날 여행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 종로3가 일대에서도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고조된 모습이었다. 24일 종로구 탑골공원에 삼삼오오 모여든 중장년층 시민들은 대체로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가 항구적으로 정착하길 바란다고 했다. 종로 인근에서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강두원 씨(61)는 "이번 정상회담은 김정은이 직접 남쪽을 방문한다는 점에서 과거 두 차례의 정상회담과는 성격이 다르다"며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반세기가 지났는데 이제는 군사적 대치를 끝낼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희망을 품고 있는 마음은 같았지만 일부 시민은 마지막까지 의구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평양에서 태어나 남쪽으로 피난 온 김 모씨(70)는 "우리 부모님은 언니와 나를 둘러업고 전쟁을 피해 여기저기를 전전했다"며 "길에서 배를 채웠던 깡통으로 지은 설익은 밥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며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의 조심스러운 태도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파주 = 강인선 기자 / 류영욱 기자 / 서울 =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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