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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수천 개 약봉지에 새긴 어제와 오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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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M갤러리서 전광영展 열려

조선일보

‘Aggregation(집합)17-DE101’. /PKM갤러리


전광영(74)의 목소리는 탁하다.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대학원에서 유학했던 1970년대, 염색 공장에서 5년간 일하면서 독한 염료에 목젖의 일부가 녹고 폐가 상했기 때문이다. 강원도 홍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환쟁이'가 되겠다고 하자 아버지에게 외면당한 그는 대학은 물론 유학 시절에도 돈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그 공장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물감 자국 없이 염색할 수 있는 기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 '전광영: WORKS 1975-2018'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선연한 색채의 작품은 그가 목소리와 맞바꾼 것이다.

1990년대 본격 선보인 '집합' 작업을 통해 세계 미술계에 먼저 이름을 알렸다. 록펠러재단, 런던 빅토리아&앨버트미술관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했고, 지난해엔 벨기에 보고시앙재단 프로젝트를 비롯해 벡 앤 에글링 갤러리(빈), 펄 램 갤러리(홍콩) 등에서 개인전을 했다. 올해는 국내 작가 중 처음으로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집합' 연작은 고서(古書)로 감싼 세모, 네모 약봉지 수백~수천 개를 정교히 박아 넣고 때로 돌출시켜 일궈낸 거대 조형물이다. 지난해 보고시앙 재단에서 전광영 개인전을 기획한 아사드 라자 큐레이터는 "옛사람이 읽은 고서의 시간, 작품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 작품을 보는 지금의 이 시간이 모두 한 작품안에 겹쳐진다"고 했다.

무채색으로 물들인 작품은 파이고 튀어나온 부분이 음영을 만들면서 분화구가 있는 혹성의 표면처럼 보인다. 최근 들어 색채가 더 다양해졌다. 파란색, 초록색은 물론 노란색과 빨간색까지 볼 수 있다. 치자, 구기자 같은 천연 재료로 염색한다. 마치 꽃과 풀이 풍성하게 자라난 들판 같다. 6월 5일까지. (02)734-9467

[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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