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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디지털프리즘]드루킹 '댓글 정치학', 네이버 '댓글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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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성연광 정보미디어과학부장] “(수도권) 여론은 네이버의 베스트 댓글이 좌우한다. MB(이명박 전 대통령)가 이렇게 말했다.”

네이버 댓글조작 사건의 주범 김모씨(필명 드루킹)가 대선을 한 달 앞둔 지난해 4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드루킹은 이 글에서 “2012년 MB 세력이 비밀리에 도입한 ‘댓글 기계’가 악플(악성댓글) 공격에 활용되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며 지지자들에게 선플(특정 기사에 동조하는 댓글)로 맞서 싸워줄 것을 호소했다. 그는 자신을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기계로봇에 맞서 싸우는 혁명군 지도자 존 코너에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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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발언이라고 주장했지만 어쩌면 드루킹 자신이 사이버 여론을 바라보는 시각이었을 것이다. 실제 경찰 수사과정에서 밝혀진 이후 행적을 보면 그에게 댓글 시스템은 철저히 정치적 신념, 또 사익을 추구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또 기계든 인력이든 네이버 댓글만 장악하면 여론전에서 승리한다고 믿었다.

문제는 이를 드루킹 개인의 일탈적 판단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어느덧 우리 사회에서 포털 댓글, 특히 네이버 댓글은 민심의 향방을 읽는 바로미터로 작용한다. 댓글 반응에 유력 정치인과 정당의 지지율이 영향을 받고 정부 정책이 바뀐다. 연예인이나 기업은 댓글로 소비자 반응을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어쩌면 기사보다 댓글을 더 중시하는 세상이다. 댓글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댓글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정치인이든 기업가든 연예인이든 쉽게 떨쳐버리기 어려운 욕망이자 굴레다. 과거 보수 야당의 ‘십알단’(십자군알바단) 사건과 국정원 댓글 개입 사태부터 ‘드루킹’ 댓글 조작사건까지 조직적 여론조작 행위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매크로 프로그램이나 댓글 아르바이트를 활용한 상업적 바이럴마케팅도 일상화된 지 오래다. 기계든 아니든 자기편 댓글을 댓글난 상위 실시간 검색 순위로 끌어올리기 위한 클릭 전쟁은 지금 이 시각에도 활발하다.

정작 이번 드루킹 사태의 근원적 관리 책임이 있는 네이버의 입장은 뭘까. 댓글 조작 행위는 서비스에 대한 이용자의 신뢰를 깨뜨리는 영업방해로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억울해한다. 하지만 수익 측면을 보면 다른 얘기다. 댓글은 뉴스 콘텐츠를 통해 포털로 들어온 이용자들의 체류시간을 늘리는 주요 영업수단이다. 이용자 체류시간은 곧 광고단가와 직결된다. 논란이 클수록 그래서 댓글을 많이 달수록, 편을 갈라 싸울수록 네이버엔 이득이다.

네이버가 댓글 서비스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다. 댓글을 달려면 이용자들이 반드시 로그인을 해야 한다. 로그인한 이용자들의 서비스 이용정보는 빅데이터사업의 주요 자산이다. 미래 수익과 직결되는 셈이다.

네이버가 온갖 논란에도 실시간 검색어 서비스를 그대로 유지하고 댓글난에 ‘좋아요’ ‘화나요’ 등 아이콘·댓글접기 기능을 도입해 새로운 형태의 댓글 전쟁을 유발해온 것도 이 같은 경제논리 때문 아닐까.

여론 조작은 새로운 디지털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적폐다. 포털도 이제 자사 이익보다 사회적 책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이번 드루킹 사건으로 ‘창과 방패’의 이치처럼 기술적 차단 정책으론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게 입증됐다. 뉴스 소비구조의 근본적 변화가 전제돼야 한다. 공론장으로써 기능을 뉴스 생산자 사이트로 분산하는 ‘아웃링크’ 도입이 그 해법이 될 수 있다.

성연광 정보미디어과학부장 sain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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