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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물벼락'으로 시작돼 쓰나미로 돌아온 한진 조씨 일가의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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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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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벼락’으로 시작됐지만 이제는 쓰나미다. 한진그룹 총수 일가에 대한 경찰과 세무 당국의 조사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2일 대국민 사과를 내놨다. 하지만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미 사안이 커질 대로 커져버렸기 때문이다.

시작은 조현민(35) 대한항공 전무의 갑질 논란이었다. 조 전무가 광고사 직원들에게 고성을 지르며 물잔을 던졌다는 ‘갑질’ 논란이 지난 12일 보도되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조 전무는 이날 ‘예정된 연차휴가’를 쓰기 위해 해외로 떠나면서 기내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나를 찾지마’라는 해시태그를 붙였다. 사안에 대한 인지가 그만큼 심각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틀 뒤인 14일, 오마이뉴스가 대한항공 직원으로부터 제보받은 음성파일을 공개하며 대중은 크게 놀랐다. 4분21초 분량의 음성파일에서 조현민 전무로 추정되는 인물은 누군가에게 “누가 몰라? 사람 없는 거?”, “어?”, “누가 모르냐고 사람 없는 거!”, “아이씨 이사람 뭐야!”, “근데 뭐!”, “됐어! 가!” 등 상식을 벗어난 고성과 발언을 이어갔다. 이같은 갑질이 워낙 일상적이어서 날짜만 특정하지 않으면 제보자를 알 수 없다고 제보자는 주장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사람 대접’을 하지 않는 안하무인의 태도는 ‘재벌3세’의 갑질 그 자체였다.

여론은 갈수록 악화하기 시작했고, 그간 조씨 일가의 갑질에 시달리던 대한항공 직원들의 증언이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와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조현민 전무는 베트남 휴가지에서 15일 새벽 급거 귀국했고, 이날 밤 직원들에게 사과 이메일을 보내 사과했지만 대중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사과를 하면서도 사퇴에 대한 언급은 한 줄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귀국 중 마주친 취재진에게 “얼굴에는 (물을)안 뿌렸다”며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한항공은 다음 날인 16일 조 전무를 “경찰 조사가 나올 때까지”라는 단서를 달아 대기발령했지만, 이 역시 사안에 대한 기업의 인식이 안이했던 지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불과 3년 여 전에도 한진그룹의 맏딸이자 그의 언니인 조현아(44)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땅콩 회항’으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다가 집행유예가 끝나기도 전인 지난달 말 복귀한 뉴스가 논란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너 일가의 기업 사유화가 근본적인 문제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조씨 일가가 안일하게 대응하는 가운데 17일 경찰은 “조 전무가 회의 참석자들을 향해 음료를 뿌렸다는 진술이 확인됐다”면서 당사자인 조 전무를 피의자로 입건하고 출국정지를 신청, 수사에 착수했다. 청와대 사이트에는 ‘국적기 자격을 박탈하라’는 청원이 계속 올라왔다. 대한항공에 대한 여론은 악화일로에 놓였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이 사건에 대해 침묵을 고수하는 가운데, 총수 일가의 갑질 제보는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카카오톡에 ‘갑질 불법비리 제보방’을 만들었는데 개설 닷새 만에 800명이 넘는 직원들이 폭언·폭행, 밀수, 관세포탈, 횡령 등을 비롯한 제보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간 참을만큼 참았던 직원들의 인내심이 임계점에 달한 것이었다. ‘땅콩회항’이 바깥에 알려지며 ‘인사보복’을 당한 박창진 대한항공 전 사무장의 사례를 비롯해 직원들 역시 조씨 일가의 일상적인 갑질에 노출돼있었다.

19일에는 조 회장 부인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 막말·욕설 논란에 휩싸였다. 그가 운전기사·가정부·직원 등에게 일상적으로 욕설과 폭언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고, 자택 공사를 하던 작업자에게 폭언하는 음성파일이 공개됐다.

여기에다 22일에는 조양호 회장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말이 새나가지 않도록 ‘방음공사’를 지시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불난 데 기름 끼얹은 형국이었다.

이번 사건은 여러 곳으로 불똥이 튀었다.

먼저 국토교통부의 대한항공 ‘봐주기’ 감독 논란이다. 조현민 전무는 부사장을 2010년부터 6년간 진에어의 등기이사로 재직했는데, 이는 외국인은 한국 국적항공사의 등기이사로 재직을 금지한 국내 항공법 위반이라는 사실이 16일 경향신문의 보도로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었다. 이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8일 감사 착수를 지시했다.

그리고 관세청이다. 한진 일가가 특정일에 해외에서 물품을 사 오면서 이를 회사 물품으로 둔갑시켜 운송료와 관세를 내지 않았다는 구체적인 의혹까지 제기됐고, 관세청은 21일 재벌가에 유례없는 압수수색에 나섰다.

논란 속에서도 무리하게 칼호텔 사장으로 복귀했던 맏딸 조현아는 ‘물벼락 갑질’로 조씨 일가의 평판이 쑥대밭이 되면서 임기를 불과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다시 물러나게 됐다.

22일 저녁,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물벼락’ 열흘 만에 조현아·조현민 자매를 일선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나도록 하는 방안을 포함한 대국민 사과를 내놨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는 게 업계 전반의 시각이다. 관세청의 조사를 통해 탈법 또는 위법 행위가 추가로 확인될 경우 조씨 일가의 나머지 멤버들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 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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