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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논란' 코레일-SR 통합...요금인하·비용절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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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로 포화인데 “수서발 노선 늘리면 요금 인하 가능” 주장
비용 절감 여지 없고 SR이 철도건설 비용 분담률 더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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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아산역에 수서고속철이 운행하는 고속열차가 정차해 있다. /코레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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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한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A씨는 최근 SRT(수서고속철)를 탔다가 즐거운 경험을 했다. 스마트폰이 고장난 상황에서 급히 기차에 올라타느라 탑승 직후 열차 승무원에게 표를 끊었는데 추가 요금이 붙지 않았기 때문이다. A씨는 “코레일의 경우 그런 상황에서 무조건 50% 할증을 붙인다”며 “역시 경쟁 체제가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 현장 발권 시 추가 요금을 물지 않는 데 몇 해 전 급히 서울발 기차를 타면서 만원 넘게 추가 요금을 내면서 화가 좀 났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대전~수서간 SRT 요금은 1만9800원으로 대전~서울역간 코레일 요금 2만3800원보다 16.8% 싸다. 탑승 직후 발권시 요금 차이는 1만9800원 대 3만5700원으로 벌어진다. A씨는 “코레일과 SR(SRT 운영사)을 합치면 코레일처럼 ‘갑질’에 가까운 요금 정책을 펼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토교통부가 코레일과 SR 통합 작업에 시동을 걸면서 논란이 고조되고 있다. ‘경쟁을 통한 서비스 질 향상’이라는 취지로 출범한 SR이 ‘철도 공공성 유지’라는 구호에 밀려 출범 1년여만에 다시 코레일로 통합되는 수순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만 보이고 국민 편의는 안중에도 없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 18일 ‘철도 공공성 강화를 위한 철도 산업구조 평가’라는 주제로 코레일과 SR 통합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연구 결과는 올해 10월말 나온다. 국토부는 이를 바탕으로 코레일과 SR 통합 여부 및 그 방식을 결정할 계획이다.

◇ 코레일 “SR 통합하면 KTX 정차역 신설” 통합 기정 사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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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식 코레일 사장은 17대와 19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민주당 서울시당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철도업계가 코레일과 SR 통합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유 중 하나는 실세 정치인 출신이 코레일 신임 사장이 된 것이다. /코레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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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는 연구 용역 발주 목적에 대해 “코레일-SR 간 경쟁 체제로 인해 공공성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가 철도공사·노조 등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상황”이라며 “현 철도산업 구조에 대한 공정하고 정밀한 평가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철도산업의 방향성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철도업계 안팎에서는 연구 용역 결과가 ‘통합’ 쪽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김시곤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SR의 운영 성과나 영향을 평가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며 “이렇게 무리하게 하는 건 결국 통합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관련 연구기관에서는 사실상 결론을 내려놓고 하는 용역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인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코레일 역시 사실상 통합을 기정사실화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오영식 코레일 사장은 KTX 장성역 정차를 요구하는 이개호 국회의원(담양·함평·영광·장성), 유두석 장성군수 등과의 면담에서 “코레일과 SR이 통합되면 장성역 정차 문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오 사장은 취임 직후부터 “올해 안으로 SR과의 통합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나 정부가 통합 쪽으로 기운 상황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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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선 증설은 2023년 이후 가능…통합과도 상관없어

코레일은 SR과 통합하면 노선 효율화로 공급 좌석수를 늘릴 수 있어 수익성과 이용자 편의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 사장은 “코레일과 SR을 합치면 노선 효율화로 공급 좌석을 지금보다 2만~3만석 정도 더 늘릴 수 있다”고 여러 차례 발언했다. 또 그는 “수서발 고속철을 다른 코레일 노선과 연계하면 이용자 편의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용산역과 수서역을 출발하는 고속열차가 모두 지나가는 평택~오송 구간의 병목 현상이 극심한 상황에서 공급 좌석을 늘리기란 불가능하다. 평택~오송 구간의 고속철도 하루 운행 횟수는 주말의 경우 191회로 선로 용량 190회를 넘겼고, 평일은 176회로 선로 용량의 92.7%에 달한다. 2021년 인천, 수원발 고속철도 운행을 시작하면 수서역에서 출발하는 노선은 현재 60회에서 56회로 4회 줄어든다. 평택~오송 복복선화가 빨라야 2023년 완료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때까지 수서발 좌석을 늘릴 수 없다. 따라서 적어도 2023년까지는 코레일이 SR 통합으로 누릴 수 있는 노선효율화 시너지 효과는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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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과 통합하면 관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주장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코레일은 SR을 흡수통합할 경우 관련 수서발 노선 운영에 따르는 비용을 연간 5500억원에서 5130억원으로 370억원(6.8%)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2017년 SR의 비용 내역을 살펴보면 비용을 줄일 여지가 별로 없다. SR의 인건비 지출은 각각 급여 및 퇴직급여 375억원, 복리후생비 45억원 수준이다. SR 인력을 대규모로 구조조정하지 않은 한 비용 절감 효과를 낼 수 없는 환경이다.

철도시설공단이나 코레일 등에 내야하는 수수료를 줄인다고 해도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격이다. 지난해 SR은 철도시설공단에 선로사용료로 2550억원을 냈다. SR은 영업수익(기차표 판매 수입에서 원가를 뺏 것)의 50%를 선로사용료로 낸다. 코레일의 선로사용료 분담률 34%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20조3000억원의 부채를 지고 있는 철도시설공단은 SR 덕분에 지난해 13년만에 영업이익을 낼 수 있었다. 만약 SR이 코레일 수준으로 선로사용료 지급 조건을 바꾸면 비용은 절감되겠지만 철도 건설 및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철도시설공단 몫을 빼내는 격이 된다.

지난해 1116억원에 달했던 지급수수료도 마찬가지의 상황이다. 이 지급수수료 가운데 상당수는 코레일에 내는 열차 리스(장기 대여) 대금이거나 기타 서비스 이용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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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 도입으로 철도 이용자들은 연간 수백억원의 요금 인하 혜택을 보고 있다. 보통 수서역발(SR) 요금은 서울·용산역발(코레일)보다 10% 저렴하다. 이를 토대로 지난해 SRT 이용객(1946만명)이 아낀 금액을 계산하면 713억~1012억원에 달한다. 수서역 이용자 가운데 강남구와 송파구 거주자는 26.2%에 그친다. 경기도 거주민도 19.7%에 달한다. 서울 강남 지역 거주민이 SR의 저렴한 요금 혜택을 독식하는 게 아니다. 결국 코레일과 SR의 통합으로 요금 인하 혜택이 사라지면 국민의 후생은 뒷걸음질치게 되는 것이다.

세종=조귀동 기자(ca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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