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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이동혁의 풀꽃나무이야기] 돌단풍⋅깽깽이풀... 가평 명지산은 지금 봄꽃이 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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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산은 군립공원입니다. 경기도 가평군에 있어서 그런 것인데, 군립공원으로 하기에는 아깝다 싶을 정도로 좋은 곳입니다. 산세가 험하지 않아 초보자들도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다고 알려졌지만, 1,267m의 산을 오른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경기도에서는 화악산 다음으로 높은 산으로, 들머리는 완만하지만 산세가 웅장해서 등산객들에게 제법 운동을 시킨 후에야 정상의 한 자리를 내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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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명지산 들머리



명지산의 첫인상은 대개 시원한 물소리일 겁니다. 깨끗하고 맑은 물줄기가 귀를 씻듯이 청량한 음향으로 시원스럽게 흐릅니다. 게다가 명지산은 사방이 계곡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각종 희귀식물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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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명지산의 물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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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물이 풍부하다는 것부터가 다양한 식물이 자라기에 매우 좋은 장소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례로 명지산은 변산바람꽃과 너도바람꽃이 함께 자라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특이한 식생을 보입니다.

혼생은 아니지만 두 식물이 공존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하던 시절이 있었기에 명지산은 한동안 쉬쉬할 수밖에 없는 장소였습니다. 두 식물이 하나의 산에서 이웃해 자라는 것이 뭐 그리 특별한 일인가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두 식물의 분포가 겹치지 않는 것으로 여겼던 때는 정말 대박 같은 뉴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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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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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이 워낙 많다 보니 봄에 명지산에서 돌단풍 보는 건 일도 아닙니다. 계곡의 바위 풍경이 좋아 구도만 잘 잡으면 누구나 멋진 작품 하나쯤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핸드폰 카메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하는 것이 계곡에 핀 돌단풍입니다.

그런 조경적 특성을 알아보았는지 요즘은 돌단풍을 물가 주변에 많이 심는 편입니다. 그러면 봄부터 가을까지 물가 풍경을 단조롭지 않게 해줍니다.

돌단풍은 그 정식 명칭도 좋지만 ‘바위나리’라고 하는 별칭도 참 좋습니다. 돌단풍은 단풍잎을 닮은 잎의 모습을 보고 지은 이름이고, 바위나리는 나리를 닮은 꽃의 모습을 보고 지은 이름입니다. 둘 다 순 한글 이름이라 더욱 정겹게 들립니다.

명지산은 내륙에 위치해 있어 비교적 추운 곳입니다. 다른 곳은 벚꽃 축제가 다 끝나가는 마당인데 명지산 주변은 이제야 벚꽃이 피어나 때늦은 상춘객을 맞이합니다. 벚꽃이 이 정도다 보니 높은 지대에서는 야생화가 다른 곳보다 더디게 핍니다. 4월 중순인 이맘때 가도 고깔제비꽃 아니면 점현호색 정도만 빠끔히 얼굴을 내밉니다.

하지만 명지산 둘레의 계곡 쪽 사정은 다릅니다. 일단 이곳에는 서울족도리풀이 참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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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족도리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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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족도리풀은 꽃받침통의 갈래조각이 뒤로 살짝 휘어지고 꽃 안쪽에 옅은 색의 무늬가 테를 이루고 있으며 잎자루에 털이 있는 점으로 유사종과 구분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통 모르겠다 싶으신 분은 그냥 서울 근교의 산에서 족도리풀 종류를 보게 되면 대개 서울족도리풀이겠거니 하시면 됩니다. 서울 근교에는 대부분 서울족도리풀이고 드물게 무늬족도리풀이나 족도리풀이 있는 정도입니다.

사진가들로 하여금 명지산 계곡을 찾아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게 하는 건 들바람꽃 군락입니다. 지금이야 들바람꽃이 여기저기서 발견됩니다만, 자생지가 많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매우 귀한 존재였습니다. 중부지방에서는 화야산이나 명지산 근처에서 발견되고 그 이남에서는 볼 수 없는 식물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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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바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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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학자들조차 이 들바람꽃을 북부지방에 분포하는 숲바람으로 오인하곤 했습니다. 현재 남한에는 숲바람꽃이 자생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니 모두 들바람꽃으로 보면 됩니다.

들바람꽃 사이에서 간간이 보라색 고개를 내밀고 있는 건 깽깽이풀입니다. 깽깽이풀은 한때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Ⅱ급식물로 대접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많이 발견되어 해제됐습니다. 약용으로 재배하다가 그만둔 곳에서 퍼져 자라기도 하므로 장소에 따라 자생하는 것인지의 여부가 불분명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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깽깽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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깽깽이풀은 예쁘지만 기온과 바람에 민감해 피기 무섭게 져버리는 꽃입니다. 그러므로 깽깽이풀을 원예종으로 개발하려면 개화 기간을 길게 하는 것이 관건일 것입니다. 방패 모양의 잎 모양도 특이하고, 열매가 벌어지기 무섭게 개미가 물어가는 씨도 특이하지만 잎이나 열매에 신경 쓰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요.

명지산 계곡의 야생화 수준을 드높이는 건 애기송이풀 군락의 존재입니다. 애기송이풀은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Ⅱ급식물입니다. 계곡 주변에서 자라는 습성을 지닌 풀로, 다 커봐야 키가 사람 손 한 뼘을 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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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송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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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와 강원도 이북에서 자라는 식물로 알았다가 경북 경주시 토함산에서도 발견되더니 최근에는 경남 거제도에서도 발견되어 학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더 이상 발견되면 멸종위기식물에서 해제될지 모르니 이제 그만 발견되는 것이 신상에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애기송이풀만큼 귀한 건 아니지만 금붓꽃이 명지산 계곡에는 매우 실하게 자랍니다. 꽃도 많이 피는 편이어서 그 건강성에 놀라게 됩니다. 노다지 색 붓꽃이 여기 저기 피어난 모습에서 계곡이 품은 생명이 왜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지를 고개 끄덕이며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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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붓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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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산이 한때 가슴 떨리는 산이었던 건 광릉요강꽃의 존재 때문이었습니다. 스물세 포기까지 있었던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데 소문이 나면서 훼손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세 포기로 줄었습니다. 그 후에 다 없어졌다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확인할 필요도 없고 더 이상 가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꽃은 어느 누구의 소유가 아닐진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꽃이 아름다운 건 “저만치” 피어 있어서입니다. 내 손에 쥐는 순간 꽃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는 걸 왜 모를까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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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군락을 이루었던 명지산의 광릉요강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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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산의 봄은 늦어서 좋습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봄! 그런 봄이 진짜 봄인데 언제부턴가 우리는 맞이하기 바쁘게 봄을 보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희망입니다. 늦어서 좋은 명지산의 봄이 아직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이동혁 풀꽃나무칼럼니스트(freebowl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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