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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책과 삶]그림으로 담아낸 시장사람들의 일상과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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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그려드립니다

김은미 글·그림 | 온다프레스 | 92쪽 | 1만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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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라는 직업 때문에 인터뷰를 할 때가 많다. 정치부·사회부·경제부·문화부 등 부서별로 인터뷰의 길이와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방식은 다양하지만, 기자들이 분류하는 결과는 두 가지다. 얘기가 되는 것과 얘기가 안되는 것.

사회부 수습기자를 할 때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 인터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저마다 뭔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난 할 말 없어요.” “바빠요.” “그런 거 몰라요.” “관심 없어요.” 퉁명스러운 답이 돌아올 때는 민망함이 배가된다.

경향신문

사람들 반응을 그대로 선배에게 전하면 ‘일을 제대로 안 했다’는 핀잔을 듣는다. 배가된 민망함에 핀잔까지 받아 쫓기듯 또 다른 사람을 찾아가 묻는다. 그러다보면 기사에 꼭 적합한 말을 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보람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든다. 10명 중 8~9명은 관심이 없고, 1~2명이 해준 말이 사람들의 진짜 반응일까.

‘시장과 그 너머의 삶에 관한 인터뷰’라는 부제에서 보듯 책은 작가가 지난해 4~10월 경기 성남 모란시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을 담은 그림책이다. 작가는 이른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상인과 손님들 곁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책에는 여러 상인이 나온다. 이불 납품 중개상을 하다 1997년 외환위기 때문에 직접 장사를 시작한 이불 상인, 과수원을 하는 부모 아래서 자라 30년째 화초를 파는 자매, 평생 시장에서 같이 일하다 무릎관절이 나빠져 수술받은 아내가 퇴원하면 제주도 구경을 가겠다는 상인, 낚시를 좋아해 아내에게 자주 혼났지만 물고기 장사를 한 뒤로 혼나지 않는다는 상인, 다섯 딸에 손주까지 칠십 평생 아이만 키워 누구보다 여성 아동복은 잘 고른다는 30년차 아동복 상인. 작가는 그들의 상상 속에 있는 꿈과 희망도 그림으로 담았다.

평범한 말이나 혼잣말 같은, 기자 기준으로 보면 ‘얘기가 안되는 것’도 많다. ‘하고 싶은 게 있느냐’는 질문(질문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답변을 보면 유추할 수 있다)에 “날도 더운데 뭐하러 자꾸 와. 저짝에 사탕가게 가봐. 거기 언니가 얘기 잘 해줄겨” “바빠요, 비 올 때 와요”처럼 일 때문에 인터뷰 거부하는 말. 또 “하고 싶은 거? 그런 거 없다” “로또나 터졌음 좋겠다”는 답변, 아예 답도 않는 상인. 책의 매력은 사람들의 말과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은 데 있다. 사실 이런 지극히 평범한 것들이 우리의 진짜 삶이기 때문이다.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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