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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책과 삶]현재의 미국 소름 끼치게 반영한 미래 미국의 디스토피아적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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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디블 가족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 592쪽 | 1만6500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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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편이 나아지는 것에 적응하긴 쉽지만, 그 반대를 받아들이긴 어렵다. 심지어 그걸 부당하다고 느낀다.”

경제대국 미국이 망하면 미국인들은 어떤 심정일까. 하룻밤 새 달러가 휴지 조각이 됐을 때, 아시아계 관광객들이 미국 경제를 먹여살리는 큰손으로 자리잡았을 때, 미국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미국이라는 나라의 위상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 치솟는 물가에 식료품을 사기도 어렵고 재활용수로 설거지를 해야 하고, 한 집에 세 식구가 모여 살게 되면 어떨까.

경향신문

소설 <맨디블 가족>은 ‘~한다면’이라는 가정법으로 쓰여졌다. 작품 배경은 2029~2047년 미국이다. 중국과 러시아 주도로 금융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방코르’라는 새로운 기축통화가 달러를 대체하게 된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몰려든다’는 소설의 부제처럼 미국은 벌써 몇 번이나 위기를 맞은 상태다. 2001년 9·11테러에 이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2024년 인터넷 인프라가 마비되는 스톤에이지 사건까지. 이런 위기에도 미국은 빠르게 안정되는 듯했다. 하지만 ‘달러의 몰락’은 전혀 다른 세상을 만들어낸다.

2029년 미국 대통령은 금융 쿠데타에 맞서 무혈 전쟁을 선포한다. 정부는 방코르의 유입을 금지하고, 개인의 금을 몰수한다. 미국은 보복성 채무불이행을 선언하면서 ‘불량국가’라는 지탄을 받게 된다. 과도한 통화 제작 정책은 인플레이션을 초래해 서민들의 재산을 집어삼킨다.

린 램지 감독이 영화화한 소설 <케빈에 대하여>로 2005년 세계 최고 권위의 여성문학상인 오렌지상을 받은 라이오넬 슈라이버(61)는 <내 아내에 대하여>(2010)로 미국 의료제도의 모순을, <빅 브라더>(2013)로 비만 문제를 다뤄 전 세계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맨디블 가족>은 슈라이버의 2016년 발표작으로 “현재를 소름 끼치게 반영한 미래 배경의 소설”(데일리메일)이라는 평을 받았다.

소설은 97세의 더글러스부터 13세 윌링 다클리까지 4대에 걸쳐 맨디블 가족의 이야기로 세상의 변화를 예견한다.

선대로부터 유산을 물려받고 저작권 에이전시로 큰돈을 벌었던 더글러스는 아흔을 넘긴 나이에도 호화로운 노인 생활시설에 머물면서 지력과 체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달러 가치가 떨어지자, 그는 그저 쇠약한 노인으로 전락하고 만다. 중산층 생활을 영위했던 더글러스의 자녀와 손자들은 유산을 물려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물거품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2047년쯤엔 미국은 더 이상 매력적인 나라가 아니다. 미국 이민을 열망하던 라틴계 사람들은 선조들의 땅으로 떠나버리고 없다.

작가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여러 위기를 극복하며 어떻게 세계 경제를 이끄는 영광을 누렸는지, 또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며 어떤 해악을 끼쳐왔는지를 조망한다. 그리고 미래의 시점에 상대적 빈국이 된 미국의 모습을 그린다. 정부 실책과 부자들의 탐욕을 꼬집고, 그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진 서민들의 애환을 담아낸다.

슈라이버는 한 인터뷰에서 “미래를 배경으로 하다보니 기존 SF 소설과는 차별화할 필요가 있었고, 우선적으로 경제적 디스토피아 세계를 구현하는 데 주력했다”면서 “경제는 이 소설을 이끄는 진정한 원동력”이라고 했다.

철저한 자료 조사를 토대로 썼다고 한다. 등장인물 간 대화에 경제학 이론을 자연스럽게 집어넣는 식이다. 작가의 통찰에 탄복할 때도 있지만, 몇 장면에서 이론서를 읽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미래 사회상이 이 소설의 재미다. 2029년이면 먼 미래도 아니다. 출판 에이전시 사업가, 소설가, 신문기자, 사회복지사, 경제학자 등 ‘기성세대’의 직업군은 달러의 몰락이 아니더라도 이미 퇴물 취급을 받는다. 윌링과 같은 ‘미래 세대’는 일자리를 두고 로봇과 경쟁해야 한다. 2047년 미국인의 평균 수명은 92세에 달하고 칩을 신체에 이식받아 사람 자체가 신용카드로 인식된다. 인터넷 인프라의 마비로 물이 부족해지고, 공과금을 우편으로 내야 하는 ‘역사의 후퇴’도 그려진다.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가족’이라는 인간 사회의 관계망이다. 가난해진 사람들은 서로에게 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소설 안에서 한 세기를 거듭해도 서로를 지탱해주는 건 가족이다. <맨디블 가족>은 미래 소설이지만, 현재 ‘미국’, ‘미국인’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작품이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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