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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책과 삶]‘자선사업’으로 야만적 탐욕을 가린, 교묘한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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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 유령 이야기

아룬다티 로이 지음·김지선 옮김 |문학동네 | 180쪽 | 1만3800원

경향신문

장관은 마을 사람들이 도시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간 도시의 판사는 이주민들이 모인 판자촌을 불도저로 밀어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마을로 돌아가니 댐과 채석장, 경찰, 게릴라들이 장악했다. 인도 여러 곳에서 벌어진 일이다.

농민들은 자살한다. 25만명이 죽었다. 아이들은 위험한 교차로를 오가며 구걸한다. 가난에 내몰린 사람들은 8억명. 하루 20루피(300~400원)로 산다. 인도 최고 부자 무케시 암바니의 개인 재산은 200억달러다. 부가 더 많은 부를 만든다. 그가 지배하는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는 석유화학 회사부터 학교, 생명과학연구소에 방송국까지 거느린다.

부자 100명의 자산이 인도 국내총생산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한다. 모든 것을 사영화한다. 국가는 철저히 자본 편이다. 경찰은 토지보상에 항의하는 사람들을 총으로 쏴 죽였다. ‘특별 보안법’이란 걸 만들어 반정부적인 생각을 품는 것조차 단죄한다.

자본주의는 교묘하다. 인도의 거대 기업들은 록펠러나 카네기재단의 ‘자선사업’을 배웠다. 병원을 지어주고, 예술을 지원하며 야만적 탐욕을 가린다. 아룬다티 로이는 기업이나 재단이 출연한 비정부기구들은 전 지구적 금융이 저항운동을 매수하는 도구라고 말한다. 국가와 자본은 이 불평등을 발전이라고 부른다.

로이는 인도의 사례에서 세계 자본주의 작동 방식을 읽어낸다. 로이는 불평등을 제조하는 이 체제에 뚜껑을 덮고, 기업·개인의 고삐 풀린 부의 축적에 마개로 막고 싶다며 실천 방안을 제시한다. 기업 교차소유 금지, 천연자원·물·전력·교육의 사영화 금지, 주거·교육·보건의 권리 실현, 부의 대물림 금지다.

인도 민중의 참혹한 현실을 읽는 것은 고통스럽다. 로이의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직시와 고뇌에서 나온 문체는 현실을 더 깊게 각인시킨다. <작은 것들의 신>으로 1997년 맨부커상을 받은 작가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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