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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시인의 마을] 곡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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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곡두 홍 일 표

얼굴 붉어진 백일홍의 마음을 만지고 가는 손은 누구인가요? 물거울처럼 이제 눈 좀 떠봐요 댓돌에 앉아 젖은 그림자를 봄볕에 말리며 조속조속 조을던 곳 내 사랑 무성한 한나절 우리 둘이 몰래 숨어들던 골목 다 지우고 이제 보이나요? 내 안의 당신은 아직 스무살, 배추흰나비 나를 간질이는 해질녘이었지요 눈 한번 감았다 뜬 사이 당신이 다녀간 줄 모르고 집 앞에 서서 애꿎은 싸리나무만 툭툭 분지르고 있었지요 무릎에 앉았다 날아가는 늦가을, 명부(冥府)의 어느 어름인지 짜울짜울 졸음이 오네요 거긴 아직 비 내리고 눈 내리나요? 당신의 잠 속에 낯익은 목소리가 민들레 꽃씨로 나는 게 보여요 볕이 좋아 향기로운 뜨락에는 당신이 놓고 간 계절이 있어요 아직도 누군가 몰래 들어가 혼자 살고 있는

-시집 <나는 노래를 가지러 왔다>(문학동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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