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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3500원에 친환경 급식 차리는 나는 ‘일용잡급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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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학교에 일하러 가는 사람들] ② 급식실 살림꾼 ‘영양사’의 하루

10년 경력 영양사는 무기계약, 영양교사는 정규직

학교는 ‘시험만 잘 치면 된다’고 가르치지 않으면서

임용시험 거치지 않고 근무하는 이들을 차별하는 곳



한겨레

급식실 영양사는 아침마다 도착한 식재료를 검수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재료의 온도를 기록해둬야 이어지는 조리 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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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단지 학습하는 공간을 넘어 아이들이 자라는 곳이다. 아이들을 먹이고, 학교에 남은 아이들을 돌보고, 여러 예술·체육 활동을 즐길 수 있게 하고 혹시 마음이 다치지는 않았는지도 살펴야 한다. 모두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지만 교사가 이 모든 것을 담당하기엔 역부족이다. 학교는 이들을 강사로, 돌봄전담사로, 상담사로, 영양사로, 조리원으로 다루고 세상은 이들을 ‘아줌마’로 부르기도 한다. 학생과의 관계 속에서 얻는 보람과 학교라는 시스템 속에서 받는 차별 사이에 이들의 삶이 놓여 있다.

<학교에 일하러 가는 사람들>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의 실제와 의미를 생생하게 보여주려 현장 취재 내용에 문학적 요소를 가미했다. <한겨레>는 ‘전국교육공무직본부’의 기획으로 이철 작가가 본 학교 현장을 매주 한 차례씩 모두 10회에 걸쳐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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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가 도착했다. 배달기사가 검수대에 상자를 내려놓는다. 학교 급식실 영양사 손현아씨가 가운 주머니에서 온도계를 꺼낸다. 삑~! 비접촉식 적외선 온도계이다. 0도씨. 배달된 김치의 표면 온도를 재고 서류에 기재한다. 오늘 쓸 양배추와 마늘의 온도는 8도씨와 6도씨. 원산지는 각각 경상북도 군위와 제주도 서귀포이다.

“저희가 다루는 서류가 굉장히 많아요. 매일 아침 검수서 작성하는 거부터 시작이에요. 이렇게 껍질을 까서 오는 채소는 온도를 재서 기록하고. 조리 과정 중에 체크해야 하는 것들도 많아요.”

조리 완료 시간과 배식을 끝낸 시간도 적어야 한다. 조리 완료 후 한 시간 이내에 배식이 시작, 끝날 때까지는 두 시간을 넘기면 안 된다. 육류나 채소류 등 식재료에 따라 칼과 도마를 구분해서 썼는지도 기록 사항이다. 냉장고와 냉동고가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지도 살핀다. 냉장고는 5도씨 이하, 냉동고는 영하 18도씨 이하를 유지해야 한다. 소독고의 설정 온도와 시간도 매일 점검하고 기록한다. 소독고 내 식판의 온도는 71도씨 이상이어야 한다. 그 날 쓴 도마와 칼, 그리고 세정대와 장갑은 소독해야 하는데, 소독제의 제조 시간과 농도까지 서류에 기록한다.

“검수서를 포함해서, ‘해썹’이라고 들어보셨죠? 학교에서도 해요. 저는 그걸 관리도 하고, 조리실무사님들께 어떻게 작성하는지 교육도 하고.”

해썹(HACCP ; Hazard Analysis and Critical Control Point)은 식품 위생을 관리하는 인증 기준이고 방법이다. 식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모든 과정을 살펴서 위생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를 분석하고, 그것을 중점 관리하는 방법이다. 중점관리대상을 시시피(CCP ; Critical Control Point)라 하고, 일반관리대상을 시피(CP ; Control Point)라고 한다. 학교 급식은 중점관리대상 9개 과정, 일반관리대상 2개 과정으로 체계를 갖춰 급식의 위생을 관리한다. 검수는 중점관리대상 세 번째 과정에 해당한다.

손현아씨의 책상은 ‘CCP3’이라고 적힌 서류철을 비롯해 아직 정리되지 못한 여러 종류의 서류로 인해 어지럽다. 책장에도 서류철이 가득하다. 영양사가 이것들을 관리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급식을 관리하는 책임이 영양사에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현아씨는 무기계약직이다. 정규직인 영양교사와 동일한 책임을 지고 있지만, 권한과 임금은 차이가 난다. 연차가 쌓이면 임금 격차는 크게 벌어진다. 10년 차 영양사 임금은 영양교사의 절반 수준이다.

대학원 공부를 해도,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무자격자’ 취급
그런데 현실은 그런 시험 점수만으로 검증되는 게 아니다
‘영양교사’가 있는 학교에선 영양교육 받을 수 있고
‘영양사’가 있는 학교를 다녀 영양교육 못 받는다면
오직 ‘시험’이 가른 차별은 학생에 대한 차별이기도 하다


■ 3500원으로 친환경 채소와 한우를 먹이는 기적?

“저학년 아이들은 말 한마디에 식습관이 확 달라지기도 하더라고요. 나물 먹었어? 정말 최고다, 했을 뿐인데, 아이가 그거 때문에 편지를 써요. 선생님한테 칭찬받아서 제가 이제 나물을 먹어요, 그렇게 편지가 오면 뿌듯하죠.”

최재현씨는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14년 차 영양사다. 방학할 때면 학기 초에 비해 아이들이 무척 자랐다는 걸 느낀다. 학교에서 겨우 한 끼를 먹이는 거지만, 꼭 자기가 키운 것만 같다. 필요한 영양소에 맞춰 식단을 작성하고, 좋은 식재료를 구해 아이들한테 먹을 걸 제공하는 일. 그녀가 생각하는 영양사의 주된 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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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실 아침 조회는 영양사 책임 아래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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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식재료라고 해서 아이들이 잘 먹는 게 아니다. 콩이나 나물을 좋아하는 아이를 보는 건 흔치 않다. 아이들이 잘 안 먹는 재료라고 식단에서 배제할 수는 없다. 음식은 고루고루 잘 먹어야 건강할 수 있고, 식습관은 평생을 가는 교육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시피 준비에 무척 고심한다. 채소를 싫어하는 아이가 많으니, 야채는 잘게 다져서 쓰는 식으로 말이다.

영양사는 한 달 단위로 식단을 짠다. 학교 밖에선 달랑 한 장짜리 식단표로 생각하지만, 작성되기까지 고려해야 할 것이 무척 많다. 우선 조리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한 쪽에 튀김 요리가 들어가면 다른 쪽에 볶음을 주는 건 피해야 한다. 무침이 들어가는 게 좋다. 빨간색 파프리카와 소시지를 케첩에 볶은 반찬을 준비했는데, 육개장과 깍두기, 방울토마토를 배치하는 것은 안 될 일이다. 온통 빨간색뿐인 식판을 받아 들고 기뻐할 아이는 없을 것이다.

영양소를 따지는 일도 중요하다. 영양소는 한 주 단위로 관리한다. 식단 관리 프로그램에 주요 정보를 입력하면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타민류, 칼슘 등 주요 영양소의 함유량이 산출된다. 탄수화물은 한 주에 55%에서 70% 사이로 관리한다. 요즘은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가 많아 관련 정보를 제공하거나, 별도의 식단을 꾸리는 경우도 있다.

예산도 신경 써야 한다. 정해진 금액 안에서 한 달 치 재료를 선정하고, 품목별로 어떤 제품을 쓸지 판단한다. 예를 들어 참깨를 쓰더라도 국산을 쓸지, 외국산을 쓸지 정하는 식이다. 기본적으로 채소류는 친환경 제품을 쓴다. 육류는 국내산을 쓴다.

“예전에 중학교에서 일했을 땐데, 그때 급식비가 3500원이었어요.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장님이 그러시더라고요. 3500원으로 친환경 채소랑 한우를 먹이는 게 기적이라고. 분식점에서 파는 라면 하나가 3000원이 넘는데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냐, 물으시더라고요.”

급식실 살림을 꾸려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행주를 구멍 날 때까지 쓰고, 그걸 걸레로 쓰다가 버렸다.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학생 아이가 내놓은 쓰레기 봉투가 헐거워 보이면 급식실 쓰레기를 옮겨 채웠다. 봉투 하나 아꼈다고 조리실무사와 함께 기뻐했다. 최재현씨는 급식실에서 일하는 사람 대부분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대부분이 집안 살림에 이골이 난 ‘엄마’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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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사는 위생사고를 막기 위해 급식 밥을 미리 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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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히 들여다봐야 알 수 있는 ‘무게’

손현아씨는 교직원 중에 제일 먼저 출근한다. 보통 30분 정도 일찍 나가지만, 한 시간 먼저 출근하는 날도 있다. 올해로 12년 차다. 책상에 쌓인 서류를 정리하고 맞춰보다가, 식재료가 도착하면 조리사와 함께 검수한다. 조리가 시작되면 틈틈이 위생 관리를 하고, 조리 과정을 확인한다. 조리가 완료되면 검식을 한다. 눈으로 색을 보고, 냄새를 맡은 뒤 맛을 본다. 사진을 찍어 둬서 학교 홈페이지에 올릴 준비도 한다. 1인분 분량을 보존 용기에 넣어 냉동고에 보관하고, 서류에 기록해둔다. 보존식은 144시간, 그러니까 6일 동안 보관한다. 식중독 등의 문제 발생 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영양사 자신의 점심은 빨리 해결하고 일을 계속해야 한다. 배식이 시작되기 전 잠시 짬을 낸다. 식판에 음식을 담아 두 평 남짓 영양사실에 들어간다. 어쩔 수 없이 영양사들은 한국사회 최대의 혼밥족이 된다. 오늘 해결할 서류를 앞에 놓고, 밥 한 숟가락 뜬다. 매일매일 작성하고 점검해야 할 서류가 열 가지가 넘는다. 식당 내에 게시할 식단과 레시피, 학부모 모니터링 운영 및 결과보고는 주별로 작성한다. 월 단위 서류는 열두 가지다. 식생활 교육, 안전점검과 안전교육, 우유 신청, 식재료 품의(기안) 및 입찰자료 등이 포함된다. 6개월 단위, 1년 단위 작성 서류는 모두 다 해서 스무 가지다. 방학 중 조리실은 적막하지만, 영양사실은 서류로 넘친다. 영양교사는 방학 중에 연수를 받거나 쉴 수도 있지만 영양사는 그럴 수도 없다.

식습관은 평생을 가는 건강교육
영양소는 일주일, 식단은 한달 단위로
알레르기 있는 아이 위한 별도 식단도
일·월·6개월·1년 단위 서류 20가지 넘어
영양사는 방학도 없이 서류에 파묻힌다
그래도 견딘다, 아이들이 먹는 게 예쁘니까

“연초에는 급식 운영 계획 짜고, 식중독 비상 대책반 구성하고, 급식 전체 예결산 다 해야 하니까. 700명 급식 규모가 일 년에 5억 정도 돼요. 월별 식단 같은 건 방학 때 어느 정도 미리미리 해놔야지 안 그럼 학기 중에 일을 감당하기 힘들어져요.”

교육청에서 특정 자료를 요청하는 날이면 서류를 돌볼 일은 더 많아진다. 위생점검이라도 오면, 그동안 관리한 서류를 모두 꺼내 펼친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예정된 음식을 내놓은 것도 긴장되는 일이지만, 책임지고 관리할 서류를 매일 챙기는 일도 만만치 않다. 같은 급식실에서 일하더라도 조리사의 노동 강도는 눈에 확연히 보인다. 하지만 영양사의 일은 자세히 들여다봐야 그 무게를 알 수 있다.

“급식밥 먹고 나서 배가 살짝이라도 아프면 걱정부터 돼요. 그냥 속이 안 좋은 걸 수도 있는데, 혹시 잘못됐나, 걱정돼서 조리실무사들께 배 안 아프세요, 안 아파요? 묻기도 하고. 퇴근해서 배가 아프면 전화해요, 조리실무사들한테. 나 지금 배 아픈데 여러분 배 안 아파요?”

최재현씨는 영양사의 일이 걱정하는 일투성이라고 한다. 걱정은 출근길부터 시작된다. 오늘 쓸 물건이 잘 들어오려나, 검수는 잘 됐나, 조리는 사고 없이 잘 끝났나, 배식이 끝나면 배 아픈 아이는 없나, 위생사고 없이 하루가 잘 지나갔나, 걱정하는 일이 1년 365일이다. 내 배만 아프면 상관없다. 하지만 학교 1200명의 아이 배가 아프고 잘못될까봐 매일 긴장하고 걱정한다. 하얀 가운을 입은 영양사의 걸음이 여유 있어 보여도, 영양사의 마음은 걱정으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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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경력 영양사의 임금은 영양교사의 절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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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이 훌쩍 넘었어도 여전한 차별

학교급식이 본격화된 건 1996년 학교급식법 개정 이후다. 이때부터 도시락 대신 급식 먹는 학교가 큰 폭으로 늘기 시작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과 기업의 외식 산업 확장이 배경이었다. 학교장이 위탁 급식 시행을 결정할 수 있게 했다. 기업들이 학교 급식 사업에 뛰어들었다.

위탁 급식은 문제가 많았다. 단가는 낮고 재료비의 비중은 작았다. 음식의 질은커녕 식재료의 안전도 챙기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2003년 집단 식중독 사고가 발생했다. 13개 학교 1500여 명이었다. 학부모 등 시민들의 법 개정 요구는 컸지만, 개정은 요원했다.

2006년 6월 또다시 학교 급식 사고가 발생했다. 36개 학교, 3000여 명의 학생이었다. CJ푸드시스템은 사고의 책임을 지고 93개 초중고, 35개 대학의 급식 사업에서 철수했다. 같은 달 국회는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교육감이 학교급식 정책을 담당하도록 하고, 학교의 장이 급식을 직접 책임지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학교 급식 운영 체계는 크게 변했다. 위탁에서 직영으로 급식을 운영하는 학교가 늘어났다. 교육감들이 내세우는 정책에 급식 운영에 관한 계획이 포함되기 시작했다. 급식은 장사가 아닌 교육의 문제가 됐다. 하지만 일부 학교장은 급식 및 위생 사고와 관련한 책임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교육청과 학교장은 부랴부랴 급식을 담당할 사람들을 뽑았다. 하지만 고용되는 사람들의 지위는 법적 근거조차 없었고 처우는 열악했다.

“우리를 뽑을 때 우리가 이 자리 만들어주세요, 해서 들어간 게 아니에요. 그 자리를 만들어 놓고 들어오세요, 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뭐가 터졌다고 거길 메꾼 거예요. 그런데 학교에서 모두 다 공부 잘해서, 모두 다 대기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잖아요. 각자 자기 역할에 충실한 게 좋다고 교육하는데, 정작 학교에서 저처럼 근무하는 사람은 차별을 둬요.”

적은 월급이더라도 학생을 내 아이처럼 생각하면서 열심히 일하면 알아주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다. 보상을 기대한다는 게 내심 부끄러울 때도 있었지만, 일은 많았고 보수는 적었다. 학생들의 식생활을 지도하고, 음식과 영양에 관한 교육을 책임지라고 했다. 하지만 교사들의 영역은 피해야 했다. 잔반량을 줄이기 위한 교육을 해라, 알레르기 있는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따로 마련해 줘라 등등 교육청과 학교장은 때마다 새로운 일을 지시했다. 모두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교육 내용을 마련해도, 새로 맡은 일들을 책임지고 관리해도, 그것에 따른 대우는 없었다. 10년 넘게 일하는 동안 지위는 일용잡급직에서 무기계약직으로 변했다. 보수가 나아졌다고 하지만 차별은 여전히 컸다. 그나마도 조금 나아졌다는 처우는, 노동조합으로 단결해 힘들게 싸워 얻은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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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이제껏 ‘무자격자’에게 아이들 급식 맡긴 셈

“오히려 영양사가 일을 더 많이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해요. 저희는 급식의 급 자만 들어가도, 밥 자만 나와도 이건 영양사 선생님이 하셔야 해요, 하면 그걸 다 받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영양교사는 교사들 업무경감정책이다, 해서 교감 선생님이나 교장 선생님이 일을 커트하는 경우가 있어요. 근데 우리는 막아줄 사람이 없어요.”

김필숙씨는 13년 차 영양사다. 교육과 관련한 업무를 맡을 때에는 역할과 처지에서 오는 괴리감이 크다. 영양사 또는 영양 교사가 수행하는 교육은 식생활과 관련된 것이다. 학교급식법에는 학생들에게 식습관과 전통음식에 관한 내용을 지도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학교마다 교육 방식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영양교사는 이것을 수업의 형태로 진행할 수 있다.

영양사는 교사가 아니기 때문에 수업 형태로 교육 계획을 세울 수 없다. 교육청이나 식약청에서 주관하는 식생활교육 프로그램, 동아리 운영, 방과후활동 프로그램, 창의적 체험 등 교과 외 활동으로 운영하는 식이다. 영양교사 중에서도 교과 외 활동으로 식생활지도 교육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지만, 자격의 차이는 분명하다. 그래서 김필숙씨는 학교가 교권을 왜곡해 차별을 만드는 데 악용한다고 느낀다.

학교에서 일하는 영양사 중에는 교육대학원에 다닌 이가 많다. 학교에서 일한다는 것은 그것이 어떤 형태의 것이든, 교육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영양사가 많기 때문이다. 영양사들의 고민은 스스로 소양을 닦고, 스스로 자질을 갖추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교육대학원을 졸업했어도, 학교에서 10년 이상 일하며 많은 경험을 쌓았어도, 임용시험에 합격하지 않았으면 자격이 없다는 취급을 받는다. 말하자면 시험이 자격 얻는 유일한 경로인 셈인데, 실제 현실과 교육은 그런 점수만으로 검증되는 게 아니다.

“학생들한테도 그게 차별이죠. 교사가 있는 학교는 애들이 영양교육을 받는 거고, 영양사가 있는 학교는 교육을 못 받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학생들한테도 차별인 거예요.”

학교는 학생에게 공부가 최선은 아니라고, 직업에는 귀천은 없다고 가르친다. 모든 아이가 1등을 할 수는 없다. 어느 분야든 어느 정도의 자질을 갖췄으면 적절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바람직하다. 그런데 막상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처지를 살펴보면, 학교라는 공간엔 귀천이 있다는 생각을 떨치기가 힘들다.

최재현씨는 아이들이 ‘맛있어요’ 말해주는 게 정말 좋다. 서류에 치이고, 관리자에게 치여 일을 그만둘 생각을 하루에도 열두 번 하지만, 아이들이 먹는 게 예쁘니까 견딘다. 아이가 초록색 반찬을 밀치며, 알레르기가 있다고 거짓말을 해도, 그저 귀엽기만 하다. 그래서 아이들이 잘 안 먹으면 속상하다. 대우받는 만큼만 일하자고 다짐하는 때도 있지만, 아이들을 잘 먹여야 하니 휑한 급식실에 혼자 남아 레시피를 개발한다. 퇴근 시간은 한참 전에 지났다.

이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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