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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책 VS 책]하루키스러운, 그래서 충분히 읽어볼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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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데이 걸 | 무라카미 하루키 / 비채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 | 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사상
日 중3 국어교과서 수록된 '버스데이 걸', 스무번째 생일 맞은 소녀의 은밀한 하루 하루키 특유의 정갈한 문체 살아있어
책·음악이 인생의 핵심이라는 하루키,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 통해 음악가들의 고독·절망·희망 이야기해


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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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은 반짝반짝 빛난다. 데뷔한지 몇년 지나지 않아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었던 그는 이제 전세계에 탄탄한 팬덤을 두고 있는 스타작가다. 팬덤 규모와 독자 충성도에서 압도적인 위상을 자랑하는 그가 이번에는 단편소설과 에세이로 국내 팬들에게 돌아왔다. '하루키 문체'로 불릴 만큼 특유의 감성과 유려한 문장은 여전하다. 여기에 그림과 음악이 더해져 더욱 '하루키스러운' 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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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데이 걸'(비채)는 64페이지짜리 짧은 소설 단 한 편이 실린 책이다. 제목 그대로 스무번째 생일을 맞은 한 소녀의 평범하면서도 은밀한 하루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책은 하루키 특유의 정갈한 문체가 제대로 살아있는 작품이다. 일본 중학교 3학년 국어 교과서에도 수록돼 화제를 모았다. 국내에선 첫 공개인데, 영미권에는 '버스데이 스토리스'라는 앤솔로지 중 한 편으로 소개됐다.

독일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카트 멘시크의 몽환적 그림이 곁들여진 '어른용 아트북'이라는 점도 독특하다. 하루키의 단편소설에 아트 작품이 함께하는 '소설+아트' 프로젝트는 '잠', '이상한 도서관', '빵가게를 습격하다'에 이어 이번이 네번째다.

"모든 사람이 일 년 중에 딱 하루, 시간으로 치면 딱 스물네 시간, 자신에게는 특별한 하루를 소유하게 된다. 부유한 자도 가난한 자도, 유명한 사람도 무명의 사람도, 키다리도 땅딸보도, 어린이도 어른도, 선인도 악인도, 모두에게 그 '특별한 날'이 일 년에 딱 한 번씩 주어진다. 매우 공평하다. 그리고 사안이 이렇게까지 정확하게 공평하다는 것은 정말로 멋진 일이 아닐까."

매년 돌아오는 생일이지만, 그 하루는 모든 이에게 특별하다. 한 여성의 회상에서 시작되는 소설은 스무살 생일을 맞은 주인공의 일상에 신비로움이 더해진 하루를 그린다. 여느 때처럼 이탈리안 식당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 날, 십년간 한 번도 아프지 않았던 플로어 매니저가 갑자기 병원에 실려가면서 남긴 부탁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흥미로운 스토리, 담백한 문장에 후루룩 읽을 수 있는 짧은 분량이지만 여운은 더없이 길다. 그게 하루키 소설의 매력이기도 하다. 빨강, 주황, 핑크, 강렬한 세 가지 색으로 그려진 카트 멘시크의 일러스트도 이 책의 가치를 높인다. 주인공 소녀의 갈등을 과감한 클로즈업 컷을 통해 선명하게 토해내는가 하면, 등장인물의 얼굴 주름을 가리켜 '항공사진에 찍힌 깊은 계곡을 떠올리게 했다'는 하루키 특유의 표현을 자신만의 감각적인 그림체로 훌륭히 '번역'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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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문학사상사)는 하루키가 말하는 음악이다. 하루키 소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음식과 음악, 사랑이다. 특히 음악의 경우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작가의 이야기 세계와 깊이 연결되며 나름대로의 역할을 해낸다. "책과 음악은 내 인생에 있어서의 두 가지 중요한 핵심"이라는 그의 말처럼 음악은 그와 그의 작품을 형성하는 떼어놓을 수 없는 하나의 세계인 셈이다.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된 이 책은 언뜻 어려운 음악비평서 같기도 하지만, 음악을 통한 인간에 대한 글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고난을 딛고 일어선 '비치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 어둠의 시대에 천상의 음악을 들려준 보사노바의 거장 스탠 게츠, 미국 노동자 계급을 대변한 록가수 브루스 스프링스틴, 학대받는 사람들을 위해 노래한 포크송 싱어송라이터 우디 거스리 등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가들을 통해 그들의 고독과 절망, 희망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는 그 특유의 문체와 더해지며 또 다른 진솔한 비평으로 거듭났다. 그의 작품에 대한 팬들의 깊은 사랑은 음악이라는 또다른 영역에 대해서도 쉽게 다가가게 만든다. 그에게도 이것은 또다른 기쁨일 듯하다. "이 글을 통해 독자들과 조금이라도 음악적 공감 같은 것을 나눌 수 있다면 더 이상의 기쁨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래,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같은 종류의 심정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음악을 더 많이, 더 깊이 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당초의 내 소망은 거의 이루어진 셈이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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