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2 (수)

[매경이 만난 사람] 佛출신 세계적 석학 기 소르망 단독 인터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석학이자 문명비평가인 프랑스의 기 소르망 전 파리정치대학 교수가 문재인정부의 친(親)노동정책이 오히려 사회 분열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소르망 교수는 1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은 단기적으론 임금 상승 등으로 근로자의 복지를 개선할 수는 있다"면서도 "그러나 인건비 상승은 고용을 줄이고, 일자리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사회적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르망 교수는 특히 "한국 경제가 취약해졌다"고 진단하고 "글로벌 시대에 한국식 경제모델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는 한국 경제의 도약을 위해 반도체 등에 집중된 주력 수출산업을 다변화하고 스타트업을 육성해 경제에 혁신과 변화를 불어넣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세계경제연구원 초청 강연을 위해 방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현재 한국 경제를 진단한다면.

▷취약한 상태다. 청년실업률은 상승하고 성장은 둔화되고 있다. 창업 기업 수는 적고 역동성이 떨어졌다. 한국 대학은 우수 인재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외국에서 우수 학생과 교수도 유치하지 못한다. 한국식 경제발전 모델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기존 경제모델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지만 준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제나 정치에 충격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해야 하는지 논의나 방향성이 부족하다. 한국은 일종의 '거품' 속에 있고, 거품은 언제 터질지 모른다.

―올해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도달할 전망이다. 소득은 늘어나는데, 취약하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한국 경제가 좋은 것은 세계 경제가 좋기 때문이다. 첫 번째 취약성은 한국은 반도체와 휴대폰 등 제한된 산업에서만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잘나가는 제품의 다양성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중국 등 일부 국가에 대한 수출 의존도도 너무 높다. 두 번째 취약성은 스타트업의 부족이다. 스타트업은 혁신과 일자리를 창출한다. 이에 반해 재벌은 서비스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역부족이다. 정부는 시장에서 독점 구조를 해소하고 새로운 기업이 많이 등장하도록 규제 개혁을 해야 한다. 특히 고용시장이 나쁠 때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공공 부문 일자리를 늘리는 게 아니라 기업에 공정한 기회를 주는 제도를 통해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다.

―최근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견해가 분분한데.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근로시간을 줄이면 결과는 뻔하다. 일자리를 찾기 더 어려워진다. 한국은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국제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고 한국 제품은 세계 시장에서 쫓겨날 것이다. 한국 정부는 노동시장을 개방하고 독점 체제를 완화하는 데 더 초점을 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회적 분열 양상이 더욱 심해질 것이다.

―한국의 정치 역시 전직 대통령은 구속된다는 말이 있을 만큼 문제에 봉착했다.

▷그렇다. 한국의 정치 시스템은 정통성을 상실했다. 매번 선거가 있을 때마다 절반의 국민은 결과에 의해 소외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해법으로 미국처럼 의회와 언론에 더 많은 권력을 줘야 한다.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퇴임하면 구속된다는 불문율이 생겼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에 문제가 생길 경우 극단적인 분열이 생길 수 있다.

―해법은 무엇일까.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칠레에는 '진실·화해위원회'가 있다. 전직 대통령에게 잘못된 혐의가 있다면 이 위원회에 와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거나 아예 부인할 수 있다. 만일 진심 어린 사과를 한다면 구속되지 않는다. 일종의 사전 재판이다. 그러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사법 절차를 거쳐 구속될 수도 있다. 한국은 이와 반대다. 먼저 구속하고 사과나 해명은 나중 문제다. 특히 한국에서 정치인이 연루된 재판은 여론 재판으로 몰고 가는 경향이 있어 우려스럽다. 올바른 재판은 법에 따르지 여론에 따르지 않는다. 이것은 사회를 더욱 분열시킨다. 사회지도층이 잘못을 했다면 속죄 차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게 사회적으로 더 생산적이지 않겠나.

―오는 27일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관계가 개선 분위기다. 통일에 대한 전망은.

▷통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10년 후에도 한반도는 현 분단 상태가 유지될 것이다. 한국이 더 이상 통일을 열망하지 않고, 미국 일본 중국 등 어느 주변국도 통일된 한반도를 원하지 않는다. 북한 정권 역시 현 상태에 만족하고 있다. 다만 앞으로 남북관계가 더 활성화하고 개성공단 같은 경제 협력은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개혁 개방의 길을 걷고 중국식 모델을 수용할 수도 있다.

― '미투' 운동이 한국 사회 화두로 떠올랐다. 이에 대한 의견은.

▷한국 민주주의가 성숙하는 과정의 일부다. 한국에서 미투가 화두로 떠오른 것은 여전히 여성들이 직장과 가정에서 억압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양성평등 노력이 있었으나 부족했다.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여성에게 기회가 적었다. 개인이 개인을 상대로 권력과 지위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입법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1.05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어떤 대책이 있을까.

▷한국 정부가 출산·육아 보조금 등 재정 지출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난센스다. 출산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양하지만 여성의 지위가 중요하다. 스칸디나비아 제국 여성들은 일을 활발히 할수록 자녀 수가 많다. '슈퍼 맘'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니라 육아 인프라와 모든 사회 인프라가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과 평등한 근로조건에서 일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 여성 임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여성 임금 평균보다 낮은 걸로 알고 있다.

美와 대화 파트너된 北, 하루아침에 '정상국가' 발돋움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르면 다음달 열릴 미·북정상회담에 대한 전망은.

▷북한은 외교적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북한이 하루아침에 '정상국가'가 됐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기로 하면서 북한 정권에 정통성을 부여한 셈이다. 이번 정상회담 의제에 북한 인권 문제가 빠진 것 같은데 이것도 북한 외교의 승리다. 미·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은 비핵화를 약속하고 독립성을 보장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북한은 언제라도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도록 고농축 우라늄 등 핵무기 제조 역량은 유지할 것으로 본다. 트럼프는 미·북정상회담을 성공시키기 위해 이를 받아들일 것이다.

―다음주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전망은.

▷너무 큰 기대를 걸 필요는 없겠으나 정상회담은 성공적일 것이다. 적어도 군사적 갈등을 완화시킬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 개성공단 활성화, 평화조약 등이 논의될 것이다. 비핵화에 대한 논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핵을 어디에 쓰려는 게 아니라 핵을 이용해 회담 등에서 최대한의 이득을 보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북한은 핵을 무기로 자신의 독립성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현재 미국과 중국이 통상 등 여러 부문에서 경쟁하고 있는데, 그 승자는.

▷미국과 중국이 무역을 두고 갈등을 벌이고 있지만 현재 유일한 슈퍼 파워는 미국이다. 중국은 세계 경제대국이 아니다. 혁신과 연구개발(R&D) 분야에서도 미국에 뒤진다. 정치체제에서도 제약이 많다. 국가주석의 장기 집권이 가능한 중국의 정치체제도 단점이다. 지정학적으로 높은 야망과 목표가 있지만 이를 달성하기엔 역량이 부족하다. 중국은 미국과 달리 자신만의 세계 질서를 다른 나라에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슈퍼 파워 지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은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나라다.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고 있다는 말이다. 대통령은 임기를 채우면 떠나게 돼 있다. 미국 대통령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특별히 많지 않다. 트럼프가 아무리 트위터를 많이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정책 강화는 프로파간다(선동)나 마찬가지다. 무지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실체가 없고 계속되기도 힘들다. 트럼프는 경제전문가가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 1년이 되도록 이렇다 할 정책이 없었다.

―최근 유럽이 미국 주도의 시리아 공격에 참여한 의미는.

▷유럽은 전 세계 글로벌 경제대국으로 위상이 높지만 군사적 측면에서는 위상이 떨어지고 있다. 많은 국가에서 유권자들이 자국 정부가 군사 개입하는 것을 꺼린다. 영국과 프랑스가 시리아 공격에 미국과 동참한 것은 시리아 난민의 유럽 유입이라는 직접적인 문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들의 주요 관심사는 내실 있는 단일 시장과 소프트 파워다.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건 법치주의의 확립 때문이고, 그 이상을 이유로 개입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 소르망 교수는…

△1944년 프랑스 로트에가론 출생 △프랑스국립행정학교(ENA) 졸업 △파리정치대학 박사 △프랑스 국립동양언어문화대학교 박사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후버연구소 초빙교수 △프랑스 총리실 전망위원회 위원장 △러시아 모스크바대학교 초빙교수 △프랑스 불로뉴비양쿠르 부시장 △파리정치대학 경제학 교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자문위원

[윤원섭 기자 / 김인오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