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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광고에 대한 애착? ‘매 버는’ 조현민 사과문 [더(The)친절한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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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친절한기자들]

재벌 갑질 논란 일때마다 기다렸다는듯 사과문 내지만

변명·대리 사과·협박에 국민들 분노만 자극해


한겨레

사회봉사명령 200시간을 선고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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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땅콩’이 아니라 ‘물컵’입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둘째 딸 조현민(35) 대한항공 여객마케팅부 전무가 ‘갑질’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지난 3월 말 대한항공의 광고 제작을 맡은 ㅎ업체와의 회의에서 자신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화를 내고 물을 뿌렸다는 겁니다.

갑질도 ‘청출어람’인가 봅니다. 조 전무의 언니 조현아(44)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은 2014년 이른바 ‘땅콩회항’으로 큰 사회적 물의를 빚은 바 있습니다. 조 사장은 업무방해죄 등으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만, 최근 슬그머니 경영 일선에 복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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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민 당시 진에어 마케팅 담당 전무가 2012년 7월17일 오전 '진에어 창립 4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김포발 제주행 진에어 LJ643편에서 일일 승무원 체험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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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을 향한 따가운 시선을 느껴서일까요. 조 전무는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어리석고 경솔한 제 행동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며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문제는 바로 다음 문장입니다. 조 전무는 “광고에 대한 애착이 사람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넘어서면 안 됐는데 제가 제 감정을 관리 못 했다”고 썼습니다. 광고주라는 ‘갑’의 위치에서 거리낌 없이 나온 자신의 행동을 ‘광고에 대한 애착’이라고 표현한 셈입니다. 안하무인의 행동에 대해 사과를 하면 됐지 굳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처럼 설명한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제기됐습니다.

당장 누리꾼들의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한 누리꾼은 “자신의 본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난 부분”(@first****)라고 꼬집었습니다. “사과만 해라, 변명하지 말고”(@C7csRt4ebxW****), “광고에 대한 애착? 본인에 대한 애착이겠지”(@mikyeun****) 같은 의견도 있었습니다.

조 전무에 대한 거센 비판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언니 조현아 사장이 연루된 ‘땅콩 회항’ 논란 직후인 2014년 12월 17일, 조 전무는 대한항공 마케팅 분야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조직문화나 지금까지 회사의 잘못된 부분은 한 사람에 의해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모든 임직원의 잘못”이라고 썼습니다. 총수 일가의 ‘갑질’이 회사 전체의 잘못으로 둔갑한 셈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12월 17일께는 언니 조현아 사장에게 “반드시 복수하겠어”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 재벌 갑질 사과 ‘변명형’

재벌 기업인의 ‘변명형’ 사과 사례는 또 있습니다. 2007년 ‘청계산 보복 폭행’ 사건을 일으킨 김승연 한화 회장 이야깁니다.

이 사건은 김 회장의 둘째 아들 김동원(현 한화생명 상무·당시 21살) 씨로부터 시작됩니다. 2007년 3월 동원씨는 서울 청담동 가라오케에서 술을 먹다가 북창동 클럽 종업원 일행과 시비가 붙어 크게 다쳤습니다. 이에 격노한 김 회장은 자신의 경호원과 용역업체 직원 등을 동원해 사건 현장으로 갔고, 아들 동원씨와 다툰 종업원 4명을 청계산으로 끌고 가 쇠파이프 등으로 폭행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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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부(김득환 부장판사)는 `보복 폭행'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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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회장은 일단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자신이 직접 폭행을 휘두르진 않았다는 거죠. 경찰 소환에도 2번이나 불응했습니다. 당시 김 회장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2007년 5월6일 김 회장은 자택을 방문한 회사 임원에게 “내가 너무 감정이 북받쳤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아비의 북받친 감정’은 김 회장의 단골 레퍼토리가 됩니다. 5월10일, 검찰은 경찰이 신청한 김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했고 다음날 법원은 영장을 발부했습니다. 당시 법원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나오던 김 회장은 “국민께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저 같은 어리석은 아비가 더 이상 안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보복 폭행’을 부른 둘째 아들 동원씨는 ‘아버지 대신 처벌받고 싶다’는 탄원서를 항소심 법원에 내기도 했습니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김 회장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받았는데요. 당시 법원이 집행유예 선고에 대해 “자신의 아들이 폭행을 당한 데 대해 아버지로서 부정이 앞선 나머지 사건을 저지르게 됐다”는 이유를 들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젊어서…’를 내세운 재벌 3세도 있습니다. 현대가 재벌 3세인 정일선 현대비앤지(BNG)스틸 사장은 2016년 ‘운전기사 갑질’로 여론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당시 정 사장이 만들어서 운전기사들에게 강요했다는 A4 용지 140장 분량의 ‘갑질 매뉴얼’에는 ‘모닝콜 뒤 가자라는 문자가 오면 번개같이 뛰어 올라가’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논란이 일자 정 사장은 회사 누리집을 통해 사과했는데요, “가까운 사람,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잘했어야 함에도 젊은 혈기에 자제력이 부족하고 미숙했습니다. 겸허하게 성찰하고 진지하게 스스로를 돌아보겠습니다”는 내용입니다. 현격한 권력 차 대신 젊은 혈기가 ‘갑질’의 이유로 뜬금없이 등장했습니다.

■ ‘대리형’에서 ‘협박형’도

김만식 몽고식품 회장은 ‘대리 사과’로 역풍을 맞은 경우입니다. 김 회장은 평소 운전기사의 정강이와 허벅지를 발로 걷어차고 주먹으로 때리는 등 상습 폭행을 저질렀는데요. 2015년 해당 운전기사의 폭로로 논란이 커지자 몽고식품은 자사 누리집에 대표이사 이름으로 사과문을 올려 “명예회장의 불미스러운 사태에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밝혔습니다.

‘명예회장의 불미스러운 사태’에서 시작한 사과문은 “몽고식품은 앞으로 책임 있는 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끝이 납니다. 당사자는 뒤로 숨고, 회사가 나서서 사태를 수습하는 모양새입니다. 이 사과문에도 불매 운동이 이어지자 김 회장은 결국 직접 공장 강당에 나와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도 기자들의 질문은 받지 않고 서둘러 떠나 빈축을 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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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015년 8월11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뒤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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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박형’도 있습니다. 이번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입니다. 형 신동주 전 일본 롯데그룹 부회장과의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에 나섰던 2015년 8월11일의 이야기입니다.

이 자리에서 신 회장은 “최근의 사태는 그룹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투명성 강화에 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민 여러분과 정부, 그리고 주주, 임직원, 협력업체 여러분께서 우려하시는 점을 과감하게 개혁하고 바꿔 나가겠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신 회장은 “지주회사로 전환할 경우 연구개발과 신규채용 같은 그룹의 투자활동 위축이 우려된다”는 말을 덧붙였는데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자리는 ‘대국민 사과’ 현장이었습니다.

잊을 만 하면 터지는 재벌 갑질 논란, 이젠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사과가 이어지는데요. 정작 국민들 눈에는 되레 ‘매 버는’ 말로 들린다는 점, 알고는 있을까요?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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