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남양주 다산신도시의 한 아파트가 택배차량의 지상 통행을 금지하자, 택배 기사가 상자들을 인도에 늘어놓고 주인들이 찾아가길 기다리고 있다.입주민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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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자들은 안전을 위해 택배차량이 지상에 올라오지 못하게 해달라고 택배회사에 요구했고, 택배사는 탑차 높이가 높아서 지하주차장에 들어갈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이 때문에 아파트 단지 한복판에 택배상자들이 산처럼 쌓인 광경이 밤늦도록 이어졌습니다. 여기에 A아파트 관리소가 문제 소지가 있는 ‘택배기사 대응요령’을 공지해 입주민들이 택배기사에 ‘갑질을 한다’는 논란으로 번졌습니다.
●단지 내 후진하던 택배차량 교통사고에서 촉발
다산신도시 택배대란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지난달 7일 A아파트 단지에서 택배차량이 후진하면서 어린 아이와 엄마를 보지 못해 부딪히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입주민들은 관리사무소에 재발 방지를 요구했습니다.
A아파트 외에 다산신도시에 입주한 다른 3개 아파트 입주자대표들은 사고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을 공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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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1일 4개 아파트단지 관리사무소장이 모여 회의한 끝에 14일 택배사에 공문을 보냅니다.
“다산신도시 아파트는 차 없는 단지로 지상 전체 통행로가 인도로 구성돼 있어 차량이 통행하면 조경이 훼손되고 보행자 안전사고 위험성이 매우 높다. 단지 출입구의 지상주차장을 이용하거나, 지하주차장 제한높이를 확인해 이에 맞는 저상차량을 활용해달라. 아니면 경로당 어르신 택배서비스 등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요구사항이 담겼습니다.
그러나 택배업체 쪽에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택배기사들이 일대일 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높이가 낮은 탑차 지원이 어렵다고 설명한 것입니다.
●입주민들 “안전 위해 지하주차장에 주차해달라”
다산신도시 아파트 단지들은 이달 1일부터 택배차량의 지상 통행을 아예 막기로 결정했습니다. A아파트 관리소는 “최고의 품격과 가치를 위해 지상에 차량 통제를 시행한다”면서 주민들에게는 택배기사가 집까지 배송을 안 해주면 ‘카트(손수레)로 택배를 배달해달라’고 요청하라고 공지했습니다.
경기 남양주 다산신도시 아파트의 택배차량 관련 공고문인터넷 커뮤니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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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지문을 찍은 사진이 인터넷 상에 퍼지면서 ‘역풍’을 일으켰습니다. ‘최고의 품격과 가치’라는 문구가 문제였습니다. 집값을 높이려고 택배사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냐는 비판이 입주민들에게 쏟아졌습니다.
아파트와 입주민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해당 문구는 관리소 측에서 관용적으로 공고문에 썼던 문구라는 것입니다. 아파트 입주민 B씨는 “지하주차장 대청소와 분수 개장을 알리는 내용의 다른 공고문에도 같은 어구를 썼다”면서 “외부인들이 보기에 오해의 소지가 있던 거 같다”고 말했습니다.
경기 남양주 다산신도시의 한 아파트 주민이 택배 기사가 인도에 늘어놓은 택배상자 가운데 자기 물건을 찾고 있다.입주민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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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일부 택배업체는 아파트 동과 거리가 먼 지상주차장에 차를 대고 손수레를 이용해 물건을 날랐습니다. 지하에 들어갈 수 있는 저상차량으로 바꾼 업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택배 물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업계 1위 CJ대한통운은 집집마다 배송은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기사들이 아파트 단지 앞에 택배물량을 쌓아놓고 주인이 찾아가길 기다리게 된 것입니다.
입주민과 택배사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아 택배대란은 장기전이 될 것 같습니다. 입주민들은 안전을 위해서라도 택배차량의 지상 진입은 막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택배업체들은 택배 작업환경을 고려해달라고 맞섭니다.
경기 남양주 다산신도시의 한 아파트가 택배차량의 지상 통행을 금지하자, 택배 기사가 상자들을 인도에 늘어놓고 주인들이 찾아가길 기다리고 있다.입주민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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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사 “차량 개조에 300만~400만원 필요…입주민 절반 부담해야”
입주자 측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은 저상차량을 오는 7월까지 도입하겠으니 그 기간동안 지상통로 이용을 허용하든지, 별도 인력을 고용해 세대마다 배달을 하도록 해달라고 제안했습니다. 일반 탑차를 저상차량으로 개조하는 비용이 1대당 300만~400만원 정도 필요하니 비용의 절반도 입주민 측에서 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건축법상 지하주차장의 높이는 2.3m 입니다. 일반 택배차량 높이는 2.5~2.7m 정도이고, 일부 개인사업자들은 차량을 개조해 3m 높이의 탑차를 운행하기도 합니다. 지하주차장에 들어가려면 화물칸 높이를 낮춰야 하는 것입니다. 다산신도시에서 일하는 CJ대한통운 택배기사는 6~8명 정도입니다. 개조비용이 최소 1800만원에서 3200만원 정도 필요한 겁니다.
입주민들은 이런 비용은 회사가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입주민 대표 측 관계자는 “택배사들은 차량 개조비용을 입주민이 내지 않으면 개인사업자인 택배기사들에게 부담시키겠다고 한다”면서 “CJ 측이 한푼도 안 들이겠다고 하는 것이 문제다. 회사 차원의 지원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택배노조 “국토교통부도 문제 해결에 나서라”
CJ대한통운은 “협의 중인 사안에 대해 밝히기 곤란하다”면서 “문제가 잘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파트 측과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도 이날 성명서를 내고 택배회사와 국토교통부가 문제 해결에 책임 있게 나서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노조는 “사고를 방지하려는 아파트 단지의 결정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택배노동자가 감내할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 전반으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택배기사들이 물건을 차량에 싣기 위해 허리를 숙이고 화물칸에 들어가고 있다.서울신문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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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설계 때부터 물류 공간 확보해야” 지적
택배업체 쪽에서는 신축 또는 재건축 아파트를 설계하는 단계에서부터 물류 부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내놓습니다. 한 택배업체 관계자는 “현재 지하주차장 높이에 맞춰 물류차량을 개조하면 택배기사들이 화물칸에서 허리를 굽힌 채 물건을 싣고 내려야 한다”면서 “하루 200개의 물건을 그런 식으로 운반하다보면 작업이 너무 고되다”고 토로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상차량을 운행하는 택배기사는 거의 없다는 것이 업계 설명입니다. 어쩔 수 없는 경우 봉고나 용달트럭을 탑차 대신 투입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실을 수 있는 물량이 크게 줄어 택배기사는 물론 소비자도 불편을 겪게 된다는 겁니다.
이 관계자는 “온라인 쇼핑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입주민들도 택배가 없으면 생활하기 불편하지 않은가”라며 “아파트 설계단계에서부터 단지 내 일정 장소에 무인택배함을 설치하는 등 물류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실버택배가 갈등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택배차량은 아파트 단지 일정 장소까지만 물품을 실어다주고 노인들이 전동카트를 이용해 각 가정에 물건을 전달하는 사업 모델입니다.
노인 1명이 하루 3~4시간동안 50~60개의 택배 물량을 배달해 노인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CJ대한통운은 지난 2013년부터 실버택배요원을 모집해 170여개 거점에서 1300여명을 고용했다고 밝혔습니다. 다산신도시와 비슷하게 택배차량의 지상진입을 막았던 서울 성북구 보문동의 한 아파트도 실버택배를 도입해 갈등을 해결했다고 합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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