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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한때 '이혼'했던 김상조-김기식, 재벌개혁 아래 다시 뭉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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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을 기점으로 국내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섰다. 대통령 국정 지지율도 상승세를 타고 70%를 넘어섰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굳건한 지지율과 경기회복세가 맞물린 ‘지금’을 재벌개혁의 적기로 보고 있다. 때를 맞춰 재벌개혁 골든타임을 이끌 새 금융감독원장도 선임됐다.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거쳐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기식 전 더미래연구소장이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취임으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더불어 재벌개혁을 주도해 나갈 정부 내 ‘투톱 체제’가 꾸려졌다. 이 두 사람이 재벌개혁을 이끌 가장 효과적인 카드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한때 참여연대에서 함께 뜻을 모았던 사이이고, ‘경제민주화’라는 공통적인 지향점도 확고하다. 그만큼 주변의 기대도 남다르다. 과연 김상조 위원장과 김기식 원장은 재벌개혁을 위한 환상의 ‘케미’를 보여줄 수 있을까.

김 위원장과 김 원장이 모두 참여연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막연히 두 사람의 관계를 ‘과거의 동료’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엄밀히 말해 두 사람은 한때 견해차를 보이며 결별했던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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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 펀드’ 계기로 ‘이혼’

두 사람의 참여연대 시절을 되돌아보려면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또 한 명 있다. 바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다. 장하성 실장과 김상조 위원장은 참여연대 출범 초기 경제민주화위원회에서 호흡을 맞췄다. 장 실장은 1997년부터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을 맡아 활동했고, 김상조 위원장은 1999년 경제민주화위원회 부위원장 겸 재벌개혁감시단장을 거쳐 2001년에는 경제개혁센터 소장을 역임했다.

장 실장과 김 위원장 모두 ‘영미식 주주자본주의’를 바탕으로 재벌 총수 중심으로 짜여진 경제구조를 타파하는 데 힘썼다. 기업의 주식을 사서 주주총회장에서 의사결정권을 가진 주주로서 재벌을 견제한다는 게 두 진보학자의 공통된 견해였다. 참여연대 시절 적극적으로 펼친 소액주주운동 역시 영미식 주주자본주의에 따른 발상으로 재벌 일가를 견제하는 데 성과를 거뒀다. 회계보고서 열람 청구나 주주대표소송과 같은 당시 시민사회에서 생소했던 아이디어를 적극 도입한 것도 장 실장과 김 위원장이다.

김기식 원장 역시 참여연대 창립멤버로서 이들과 함께 소액주주운동을 이끌며 함께 재벌개혁 여론을 주도했다. 참여연대가 국내 대표적인 진보시민단체로 자리잡은 후 이들은 2006년 김상조 위원장이 참여연대에서 독립해 현 경제개혁연대를 설립하면서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당시 참여연대는 경제개혁연대 출범을 두고 “완결성을 갖는 활동기구를 해당분야의 전문단체로 분화, 독립시킨다는 오랜 구상에 따른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기존 경제개혁센터를 해당분야의 전문가단체로서 보다 발전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줬다는 얘기다.

하지만 경제개혁연대의 출범과정을 살펴보면 두 단체의 분화를 ‘아름다운 결별’로만 부르기는 어렵다는 게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이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김상조 위원장과 김기식 원장이 갈라서게 된 배경에는 그 유명한 ‘장하성 펀드’가 있었다. 장하성 펀드는 2006년 장하성 실장 주도로 조성된 1300억원의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KCGF)다. 지배구조가 모범적인 우량기업에 투자하는 일종의 ‘사회책임투자’ 펀드다. 잘못된 기업 지배구조로 인해 제값을 받지 못하는 종목의 지분을 대량 취득해 직접 구조개선을 요구, 재벌 총수의 견제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취지로 조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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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길 걸은 ‘양김’

장하성 펀드의 등장은 획기적인 취지와 방식만큼이나 숱한 논란을 낳았다. 참여연대 내부에서도 장하성 펀드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당시 사무처장을 맡고 있던 김기식 원장은 재벌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참여연대가 재벌에 직접 투자를 할 경우 이해충돌이 생긴다는 이유로 장하성 펀드를 반대했다. 소액주주운동을 펼치는 단체에서 펀드를 주도하는 게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했다.

하지만 김상조 위원장의 생각은 달랐다. 펀드를 통해 수익과 공익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참여연대 관계자는 “당시 장하성 펀드는 해외 헤지펀드와 큰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김 위원장 등 찬성 측은 재벌 견제 효과 등 경제민주화 관점에서 어긋나지 않으면 문제 없는 거 아니냐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장하성 펀드 논란으로 생긴 내부 갈등은 결국 김상조 위원장이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에서 독립해 경제개혁연대를 출범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 과정에서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속 인력 대부분도 경제개혁연대로 자리를 옮겼다. 참여연대 경제 파트에는 당시 사무처장이었던 김기식 원장을 비롯해 김경율 집행위원장, 박근용 참여연대 집행위원, 송호창 전 국회의원만 남았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두 단체가 분화할 때 매끄럽지 않았던 건 사실”이라며 “한창 감정이 안 좋을 때는 ‘참여연대 간판은 놓고 나가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전했다. 당시 참여연대에서 사용해온 경제개혁이라는 명칭을 놓고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깊어진 갈등의 골은 모두에게 상처를 남겼다. 경제개혁연대 출범 이후에도 참여연대는 재벌개혁 등 경제분야 운동을 이어나갔지만 동력은 예전만 못했다고 당시 관계자들은 회상했다. 해당분야 인력들이 한꺼번에 대거 빠져나가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경제개혁연대가 떨어져 나간 뒤 참여연대 경제 쪽이 다시 조직을 재정비하는 데까지 수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로 자리를 옮긴 장하성 펀드도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했다. 초반 실적은 나쁘지 않았다. 연일 시장의 관심을 받으며 이른바 ‘장하성 테마’를 형성하는 등 위세를 떨쳤다. 장하성 펀드가 찍는 종목은 주가가 급등하는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수익률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2012년에 결국 보유주식을 보두 처분하고 정리했다. 이 때문에 장하성 펀드는 ‘의미있는 실험’과 ‘헤지펀드의 아류’라는 상반된 평가를 오늘날까지 받고 있다.

물론 김상조 위원장과 김기식 원장은 분화 이후에도 같은 사안을 두고 공동 보고서와 논평을 내는 등 ‘동반자’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둘의 협력관계는 결코 참여연대 시절 함께 동고동락하던 시절만큼의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게 당시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양김’을 바라보는 참여연대 내부의 시각에도 온도차가 존재한다. 참여연대 출신 한 활동가는 “조직에서 떠난 지 10년이 넘은 김상조 위원장은 사실상 다른 식구로 본다”며 “비교적 최근까지 활동한 김기식 원장은 ‘참여연대 사람’이라는 인식이 더 강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분화 이후 양김은 각자의 길을 걷는다. 김상조 위원장은 ‘삼성 저격수’로 명성을 떨치며 10여년간 경제개혁연대를 이끌고 활발한 재벌개혁 운동을 이어갔다. 여러 차례 국회 입성이나 입각 제의를 받았지만 고사했다가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공정거래위원장으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김기식 원장은 정치에 뛰어들었다. 2012년 당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에 입성했다. 정계 입문 이후 금융분야를 총괄하는 정무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서민 위주 금융정책 마련에 힘썼다. 김 원장은 국회의원 생활 중 대부업 최고이자율 인하와 감정노동자 보호법안 등을 본인의 대표적인 성과로 꼽는다. 김 원장은 20대 국회 입성에는 실패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의 외곽 싱크탱크인 ‘더미래연구소’의 소장으로 재직하며 백의종군하다 금감원장으로 낙점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금융분야 전문가로 금융개혁을 늦추지 않겠다는 결단력을 보여온 김 전 의원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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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김에 거는 시민사회의 기대

돌고돌아 두 사람은 12년 만에 다시 ‘한배’를 타게 됐다. 한때 결별했던 사이이고, 10여년간 각자의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지만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라는 공통분모는 변함이 없다. 이에 시민사회는 김기식 원장이 재벌개혁의 고삐를 당길 방아쇠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간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을 주도해온 김상조 위원장 곁에 ‘결’이 다른 김 원장의 등장은 개혁의 추진력을 한층 높여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경율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은 “김상조 위원장과 김기식 원장이 지향하는 바가 상당 부분 유사한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김 원장은 분명히 다른 캐릭터다. 위에서 컨트롤하는 대로 따르기보다는 자기 색깔대로 개혁작업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김상조 위원장과 김기식 원장의 성향을 워낙 잘 아는 터라 “김상조만 해도 버거운데 김기식까지 나오나”라는 푸념도 나온다. 이를 의식한듯 김 원장은 취임사에서 “일방적인 규제 강화론자로 잘못 알려졌다”며 “너무 한쪽으로 몰지 말아달라. 의원 시절에 기업의 규제를 푸는 법안도 많이 만들었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도 “예전처럼 거리판 투사처럼 대화를 풀어가지 않을 것”이라며 “산업 전체를 보는 기관장인 만큼 국가 정책과 시장에 대한 우려를 감안해 개혁을 진행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양김 모두 시민단체 출신이라 해도 감시와 비판의 대상에서 제외될 순 없다. 김상조 위원장만 해도 올 1월 “코스닥에 상장하는 중소벤처기업에 차등의결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법무부와 긴밀히 협의하겠다”고 밝혔다가 ‘친정’인 경제개혁연대로부터 “과연 현재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에 기반해서 나온 발언인지 의문”이라며 호되게 쓴소리를 들었다.

김기식 원장 역시 취임과 동시에 주요 감시대상이 됐다. ‘친정’인 참여연대의 경우 김 원장 발탁 사실이 전해진 3월 30일에 “내정을 환영한다”고 논평을 냈다가 내부적으로 “참여연대 출신 인사의 등용에 이례적인 환영 논평을 내는 게 맞는가”라는 반론에 직면하기도 했다. 참여연대 이재근 정책실장은 “김 원장이라 해도 공직자가 됐으니 당연히 참여연대의 감시대상”이라며 “잘하는 건 박수를 보내겠지만 잘못하면 비판하고 시민사회단체로서 제 역할에 충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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