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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갈 곳 없는 비닐봉지, 누구의 책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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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일반주택과 공동주택에서 나오는 폐비닐 성상은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4일 오후 서울시가 마련한 구청과 수거업체의 간담회 자리에서 한 업체 대표가 한 말입니다. 공동주택에선 더럽고 재활용이 어려운 비닐이 너무나 많이 섞여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업체들이 수거를 거부한 뒤 갑자기 비닐이 깨끗해졌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자치구가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주택가에선 재활용이 안 되는 물건들은 가져가지 않습니다. 공동주택 재활용은 실명제가 아니기 때문에 재활용 비율이 낮습니다.

안녕하세요. 평소 서울시를 취재하는 남은주입니다. 지금 재활용 문제는 ‘폭탄 돌리기’와 비슷합니다. 환경부는 정상적으로 분리수거하겠다고 밝혔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마지못해 업체가 떠맡거나 업체가 거부할 경우 구청에서 우선 실어가는 상황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죠. 서울 송파구는 자체적으로 선별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곳엔 원래 하루 70톤 정도의 재활용 쓰레기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비닐이 쌓여가는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하루에 30톤씩이 더 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환경부는 4월말까지 중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하는데 그때까지 버틸지 의문입니다. 또 업체와 아파트가 가격을 협의해 다시 계약하려면 석달 정도는 걸릴 텐데, 그사이에 이 비닐은 어떻게 하느냐고 수거장마다 한숨이 터져나오는 상황입니다. 설령 자치구가 사람들을 동원해 아파트에서 비닐을 모두 치운다고 해도 재활용 가능한 비닐을 골라 넘겨줄 선별장이나 재활용 공장들이 더이상은 못 받겠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활용 쓰레기가 ‘폭탄’이 아니라 돈이었던 시절엔 하루 1700톤 비닐 쓰레기를 생산하는 한국의 ‘비닐 소비자’들은 우리가 버린 비닐의 절반 정도가 재활용되지 못하고 잔재쓰레기로 분류돼 매립지로 간다는 사실도, 재활용 공장에 가도 60%만 재활용된다는 사실도 알 필요가 없었습니다. 공동주택에서 돈이 되는 폐지나 고철을 주고 처리가 어려운 비닐까지 모두 땅값이 저렴한 곳에 있는 선별장이나 매립지로 쓰레기를 실어 보낸다는 사실도 알 필요가 없었습니다. 수도권의 경우 재활용 쓰레기가 많이 가는 곳은 화성, 안산 등입니다. 대표적으로 화성시엔 서울엔 한곳도 없는 종합재활용 업체 350개가 몰려 있습니다.

‘못사는 곳에 모인다’는 재활용 쓰레기의 유통경로는 이상하게도 세계지도와도 비슷합니다. 재활용 쓰레기가 문제로 떠오른 건 중국이 지난해 7월 폐기물 수입 중단을 발표하면서부터입니다. 주로 미국과 유럽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미국은 해마다 고철의 75%, 폐지의 60%, 폐플라스틱의 50%를 중국에 보냈던 재활용 수출국입니다. 영국은 자국에서 나오는 폐지의 55%, 플라스틱 쓰레기의 25% 이상을 중국으로 보내왔습니다.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중국의 재활용 원료 수입 금지가 폐기물 공급 체인을 교란하고, 재활용을 방해하고 있다”며 반발했지만 어불성설입니다. 중국으로선 저유가 시대에 굳이 쓰레기를 수입해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않고 직접 석유 부산물로 생산해도 되기 때문에 수입을 거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재활용품을 처리할 여력이 없는 나라들은 그동안의 허약한 재활용 체계를 고스란히 드러내게 된 것입니다. 지금 서울과 수도권이 비닐 수거로 진통을 겪는 것도 자체 처리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겨레

남은주 사회2에디터석 수도권팀 기자


물론 소각장과 매립지, 재활용 공장까지 갖춘 대도시는 많지 않습니다. 생태적으로 보면 대도시들은 주변 지역에 기생하는 형국입니다. 그러나 특정 지역, 특정 계층에만 쓰레기 문제를 떠맡기는 정책은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6일 서울시는 가게 넓이가 33㎡를 넘는 사업장이 일회용 비닐봉지를 무료로 제공하는 행위를 단속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비닐봉지의 유통을 막겠다는 정책입니다. 자원순환 분야 관계자들은 환경부가 비닐봉지 생산을 통제하고 재활용 시장을 넓히는 정책을 내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독일은 2019년 1월1일부터 제품 포장재를 유통하는 모든 기업은 회수와 재활용·폐기까지 책임을 지도록 하는 ‘신포장재법’을 도입할 예정입니다. 우리나라도 생산자가 수거·재활용 비용까지 책임지는 ‘생산자 책임 재활용제도’(EPR)를 도입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라면·과자 포장지만 해당되고 비닐들은 해당되지 않았던 게 현실입니다.

남은주 사회2에디터석 수도권팀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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