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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목)

'저물가에 원화 강세까지'…상반기 기준금리 인상 물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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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 강세로 수출 불확실성 커지면 한은 금리 인상 여력 제한”
한은 하반기 금리 인상 중론...한미 금리 역전 장기화 부작용 우려

물가 상승률이 정책 목표에 미치지 못하는 저물가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 행정부의 환율 압박과 이에 따른 급격한 원화 강세(미 달러 대비 원화 환율 하락)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결정에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원화 강세로 수출이 타격을 받고 물가상승률이 둔화되면 한은의 추가 금리 인상 시기가 올해 상반기 이후로 미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 행정부는 예상보다 높은 강도로 우리 정부에 외환시장 개입 정보를 공개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한미 간 이런 내용의 환율 협의가 이뤄질 경우 외환시장에서 한국 정부의 운신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원화 강세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한미 간 환율 합의는 수출, 물가, 원화 자산에 대한 외국인 투자 등 경제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며 “특히 원화 강세로 수출에 불확실성이 커지면 한은의 금리 인상 여력이 제한될 것”이라고 말했다.

◇ 급격한 원화 강세, 수출에 타격…물가 상승률도 둔화될 듯

원화 강세는 지난해 10월부터 이어졌다.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따른 글로벌 달러 약세와 한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 한반도 긴장 완화에 따른 원화 자산 선호 등이 원·달러 환율 하락을 이끌었다. 지난해 9월 말 1140원 수준에서 거래되던 원·달러 환율은 10월 말 1120원대로 하락했고, 11월 말 1080원대, 12월 말 1070원대로 더 떨어졌다. 올해 1월에는 1050~1060원대에서 거래됐다.

그런데 지난 2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올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긴축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에 원·달러 환율이 상승했다.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서 신흥국 자산으로 분류되는 원화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미 금리 인상 기대가 높아진 2월 초 원·달러 환율 상승폭이 커지며 1090원대를 회복했고 2월 말에는 1080원대에서 거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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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사진) 행정부의 환율 압박이 원화 강세를 부추기고 있다./블룸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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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지난달 말 다시 분위기가 바뀌며 원화가 강세로 전환했다. 미국 정부 당국자들이 잇따라 “한미 FTA 협상과 환율 논의는 패키지”라는 발언을 내놓으며 우리 정부에 외환시장 개입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하면서 원화 강세 압력이 커졌다.

4일 원·달러 환율은 5.6원 오른 1059.8원에 마감했다. 소폭 반등하긴 했지만 미 정부의 환율 압박이 본격화한 3월 말부터 따져보면 원화 절상 추세는 급격하다. 지난 일주일(3월 27일~4월 4일) 원·달러 환율은 20원 넘게 뚝 떨어졌다. 3일에는 1054.2원으로 2014년 10월 29일(1047.3원) 이후 3년 6개월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과거보다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원화 강세는 국내 수출업체의 가격 경쟁력을 낮춰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원화 강세는 수입물가도 낮춘다. 수입물가 하락은 시차를 두고 생산자물가와 소비자물가에 반영돼 물가 상승률을 둔화시킨다. 수출에 타격을 주고 저물가를 가중시키는 원화 강세가 추가 금리 인상을 저울질하는 한은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금리가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 국제 자금 흐름의 특성을 고려하면 금리 인상은 더 어려운 선택지가 된다. 국내 금리가 높아지면 외국인 자금이 더 유입돼 원화 수요가 높아지고 원화 강세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 “한은 추가 금리 인상은 7월 이후에나 가능”

전년대비 1%대의 낮은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고용이 부진한 상황에 대응해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 시중에 돈을 더 풀겠다고 한 계획도 당장 한은의 금리 인상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골드만삭스는 “소비와 연관성이 높은 서비스 부문의 고용 둔화와 제조업 가동률 저하 등을 고려하면 수요 측 물가 상승 압력이 높지 않아 올해 물가상승률이 한은의 전망치(1.7%)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며 “한은의 금리 인상은 올해 하반기 한 차례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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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가에 원화 강세까지 이어지며 한은의 추가 금리 인상이 상반기 이후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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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면서 수출을 중심으로 경기 회복세가 탄탄하지 않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HSBC는 “최근 보호주의가 강화되는 분위기에서 한은이 금리 인상에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며 “다음 금리 인상 시점은 7월로 예상한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올해 3~4차례 금리를 인상할 경우 한미 금리 역전 폭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이지만,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점도 전문가들이 하반기 금리 인상을 점치는 이유다. 백윤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지난 3월 미국 기준금리가 연 1.50%~1.75%로 인상되면서 2007년 8월 이후 10년 만에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됐지만, 우려했던 급격한 자금유출은 발생하지 않았다”며 “한은이 금리 인상을 서두를 이유는 크지 않다”고 말했다.

기준금리 인상이 미뤄질 것이라는 전망에 국채 금리는 한 달간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시장 금리의 지표물로 꼽히는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달 5일 연 2.311%에서 이달 3일 연 2.193%로 하락했고, 같은 기간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2.550%에서 연 2.422%로 떨어졌다.

그러나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이 미뤄지면 한미 금리 역전 현상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점은 우려사항이다. 글로벌 자금 이동은 단지 금리뿐 아니라 해당 국가의 국가신용등급, 환율 등에도 영향을 받지만 한미 금리 역전 현상이 장기화할 경우 국내에 들어온 해외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은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제한적인 수준의 자본 유출은 원화 약세로 이어져 오히려 경기 부양 효과를 낼 수 있지만, 한미 금리 역전 격차가 더 커지면 대규모 자본 유출 가능성이 현실화될 수 있다”며 “위기 상황에 대응해 당국은 자본 흐름을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연선옥 기자(actor@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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