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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우리 아빠, 내 아들도 남자" 성추행문제 남녀로 나눠선 해결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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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미투 열풍으로 고발이 이어져 펜스룰 등 남녀가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일본과 영국에서는 성추행 문제를 남녀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공통된 숙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 대표적인 지하철 성추행 문제가 26일 일본 NHK에서 언급됐는데, 수도권 전체에 적용된 여성전용칸(이하 여성칸)을 두고 차별과 여성의 행동을 제한하며 남성을 잠재적인 성범죄자 취급한다는 지적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민영철도인 게이오전철이 여성칸 운영을 밝히면서 시작된 회의적인 시선은 수십년이 지난 최근 실효성과 남녀 차별문제가 터져 나왔다.

세계일보

실효성과 차별 논란을 부른 여성전용칸. 여성칸 도입이 지하철 성범죄 근절로 이어지진 않았다. (사진= NHK 방송화면 캡처)


일본에서 여성칸은 지난 1988년 한 사건을 계기로 확산하게 됐다.

당시 오사카시를 운행하는 전철에서 여성을 성추행하던 남성 2명에게 한 여성이 용기를 내 그들의 행동에 제재를 가했다.

하지만 여성은 이들 남성에게 성폭행당하는 끔찍한 사건으로 이어졌고, 이를 계기로 여성들 불안이 가중하여 공영철도와 민영으로 확대 운영되기에 이르렀다. 현재 수도권을 중심으로 80여개 노선에서 여성칸이 운영되고 있다.

여성칸 도입 당시 남성도 전용칸 도입에 찬성 의사를 밝혔지만, 30여년이 흐른 최근 ‘여성만 우대하는 차별’이라는 지적과 여성칸 운영에 불만을 품은 일부 남성들이 차내에 진입하여 열차 운행이 지연되는 등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여성칸 도입 취지는 여성들이 안심하고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는 것에 있지만, 앞서 차별이라는 생각과 되레 여성의 대중교통 이용을 전용칸으로 한정한다는 이유로 도입 당시 80%에 이르던 찬성 의견이 최근 의식조사에서 여성 28%, 남성 18%로 떨어졌다.

특히 반대 의견에는 ‘남성을 성범죄자 취급한다’는 이유가 컸는데, 이 의견은 남성뿐만이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큰 지지를 얻고 있다.

여성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남성들을 위험하다고 낙인찍는 건 옮지 못하다며 매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내 남편, 남자친구 더 나가 내 아버지, 내 아들도 남자다. 이들을 잠재적인 성범죄자 취급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또 여성칸 도입 후 대중교통에서 발생한 성추행이 소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실효성이 미비하다는 지적이다.

일본 경찰이 발표한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하철 내에서 발생한 강제추행 사건과 검거실적은 2006년 각각 4181건, 420건을 나타낸 후 2015년 3206건, 278건으로 감소를 나타냈다. 하지만 이후 3000건 넘는 범죄가 꾸준히 발생하여 관련 통계 전부터 매년 늘어난 여성칸이 큰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의견이 많다.

NHK는 신고하지 않거나 꺼린 여성들도 있어서 실태는 통계보다 더 많고 심각하다며 여성칸 도입 후 성범죄가 줄었다고 단언할 수 없다고 문제시했다.

■ “여성칸은 ‘대피소’ 역할”..대피소 없이도 안심할 수 있어야

메이지 카쿠인대 사와노 마사키 범죄·사회학 교수는 “여성칸은 사고를 예방하고 여성이 안심할 수 있는 대피소 역할이었다”며 “이러한 장소만으로도 여성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많은 시민이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대피소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며, 이러한 장치나 시설이 없더라도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방송은 성추행 당하는 여성이 소중한 딸이나 아내, 연인, 친구가 될 수 있다며 피해 여성을 보면 말을 걸어 돕는 등 이들을 고립시키지 않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남녀를 나눠 여성을 보호하는 인위적인 모습은 일본 사회의 잘못된 점을 여실히 드러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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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도 여성칸 도입·운영을 두고 찬반이 일었다. 여성칸 보다 범죄예방에 힘써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대가 형성됐다. (사진= NHK 방송화면 캡처)


한편 여성칸 도입은 영국에서도 논란이 됐다.

영국에서 발생한 지하철 성범죄 건수는 2016년 1448건으로 조사됐다. 이는 4년 전보다 2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사태를 보고 받은 영국 야당 의원은 여성칸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앞서 일본에서 형성된 여론처럼 ‘여성이 고립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 일면서 반대에 부딪혔다.

현지 언론은 전문가 말을 인용해 "여성이 직장이나 사회에서 괴롭힘당하면 그때마다 남녀로 나눠 분리해야 하나“라고 되물으며 ”이러한 방식은 문제해결에 도움 되지 않는다. 여성칸을 늘려 성범죄를 없애려는 생각보다 사회 전체가 범죄예방에 힘쓰는 등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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