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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지평선] 도시 부족(部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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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한 가족이 여러 가구로 나뉘어 사는 경우를 흔히 본다. 나도 대학에 다니는 아이가 학교 근처로 방을 구해 나가는 바람에 3인 가족에 2가구가 됐다. 지방에 사는 가까운 친척은 5인 가족에 4가구다. 자녀 둘이 취직 대학 등으로 다른 지역으로 나가고 어르신은 요양원에 따로 모시다가 그렇게 됐다. 경기 지역에만 살아도 자녀들이 대학을 서울 등지로 가면 분가 외의 방법이 없다. 약해지는 가족 결속력을 대신할 새로운 공동체로 ‘도시 부족’을 형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국 ‘나 홀로 가구’ 비율이 29.1%로 ‘부모+자녀’ ‘부(모)+자녀’, ‘부부’ 등의 비율을 앞서서 1위가 되는 시기가 내년이다. 2015년 27.2%였던 ‘나홀로 가구’ 비율이 4년 만에 2% 가까이 증가하면서 가장 일반적 유형이던 ‘부부+자녀’ 가구마저 앞지른다.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등은 ‘나 홀로 가구’가 40%를 넘는다. 뉴욕의 화려한 독신 여성들의 삶을 보여줬던 TV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나,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의 인기도 ‘나 홀로 가구’의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

▦ 에릭 클라이넨버그의 저서 ‘고잉 솔로, 싱글턴이 온다’에 따르면 ‘나 홀로 가구’ 증가는여성의 지위상승, 통신혁명, 대도시 형성, 혁명적 수명연장이라는 20세기 후반의 네 가지 거대한 사회적 변동에 기인한다. 여성이 자기 신체에 대한 통제권을 주장하면서 결혼이 늦어지고 이혼 비율이 늘어났다. 인터넷은 혼자 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새롭고 풍부한 수단을 제공했다. 거대도시의 형성은 체육관 커피숍 클럽 배달문화 등 독신남녀가 나 홀로 즐길 수 있는 문화를 급속히 발달시켰다.

▦ 혁명적 수명 연장까지 보태졌다. 배우자가 죽고 노년기를 혼자 보내는 사람이 늘어난다. 우리나라는 2045년에 ‘나 홀로 가구’ 가운데 60세 이상 비중이 54%까지 치솟는다. 이미 고독사 등의 문제로 지자체는 ‘밥상 공동체형 주거모델’ 개발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서울시도 ‘이웃 살피미’나 사물인터넷(IoT)을 이용하는 ‘안부확인서비스’ 등을 시작했다. 과학의 발달로 수명이 급증한 것을 걱정스럽게만 볼 일은 아니다. 단지 이 위대한 인류의 업적이자 축복은 동시에 어려운 숙제를 지구촌에 던진다는 것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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