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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용병의 일생, 푼돈 목숨값에 착취당하다 버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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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정문태의 국경일기

⑧ 반공전선의 심장 ‘파땅 마을’


한국전쟁에서 타이공산당 박멸까지
미국과 타이의 반공 용병으로 투입
전쟁 끝나자 산골에 내동댕이쳐져


“요즘 경기가 영 안 좋아 보이네요?” “본디 잘 살긴 글러먹은 마을이야.” 구멍가게 주인 말이 예사롭잖게 들렸다. “제3군 출신?” “응, 윈난에서 태어나 열한 살 때 아버지 따라 버마에서 국민당(잔당)에.” “소년병이었군요?” “그땐 아이들도 다 끌려갔지. 도망치면 죽였으니.” 말이 통할 낌새가 보여 퍼질러 앉았다. “이름이?” “중국식 로타루, 타이식 송차이 차이스똥잉, 아무거나 불러.” 타이 국경에서 흔히 마주치는 경계인이다. 이쪽저쪽 어디서도 대접 못 받는 팔자니 굳이 한쪽을 택할 것도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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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당 잔당 제3군 출신으로 30년 동안 반공 전선을 누빈 뒤 파땅에 정착한 로타루(78). 정문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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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일흔여덟인 로타루는 1950년대 윈난 공격작전(한국전쟁 제2전선), 1960년대 미국의 대 라오스 비밀전쟁, 1967년 마약전쟁, 1970년대 타이공산당 박멸작전을 거쳐 1982년 파땅에 터를 잡았다. “가슴에 묻은 이야기가 많을 텐데?” “난 군인이고 후회 없어. 지금도 명령 떨어지면 전선으로 가. 리원환 사령관이 우릴 버린 게 억울하지만.” 거침없는 그이 말문이 열렸다. “도이매살롱 쪽 제5군은 돤시원 장군이 부하들 잘 돌봤는데 우리 제3군은 리원환 혼자만 챙겼잖아.”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게 있다. 로타루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국민당 정규군 출신 돤시원이 지역 군벌 출신 리원환보다는 좀 나았다는 게 소문일 뿐이다. 오히려 그 둘은 아편 이권을 놓고 다투면서 개인적인 부를 쌓았을 뿐 부하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특히 리원환은 제3군 본부였던 땀응옵 사람들 사이에도 평판이 나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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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 소비에트 유니언과 싸우자.” “중국을 되찾고 교화로 씻어내자.” “도적을 죽이자 아니면 내가 죽든지.” “공산당 사령관(주덕)과 마오 의장을 죽이자.”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한국전쟁의 중국군 포로 가운데 타이완을 택한 이들을 뽑아 중국 본토에 정보원으로 파견하면서 배신을 막고자 이런 타투를 온 몸에 새기도록 했다. 정문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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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전선 뛰면 한 달에 몇 푼이나?” “1967년 반콴전투 땐 20밧(5100원), 1970년대 파땅전투 땐 400밧(6만4000원), 1981년 펫차분전투 땐 900밧(9만8000원).”(※괄호 속은 2018년 가치로 환산한 돈이다.) 이게 목숨 걸고 미국과 타이의 반공 용병으로 뛰었던 대가다. 착취도 이런 착취가 없다. 여기 인도차이나 반공사업의 정체가 숨어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는 전비 지원 대신 국민당 잔당의 아편 생산과 운송을 도왔고, 타이 군은 그 마약을 눈감아 주며 뒷돈을 챙겼고, 잔당 지도부는 자손 대대 이어지는 엄청난 부를 쌓았고, 잔당 사병은 착취당하며 그 부패구조를 떠받쳤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잔당은 남의 땅 서러운 국경에 내동댕이쳐졌다. “여기 자리 잡을 때 타이 정부나 리원환이 샐 닢도 준 적 없다.” 로타루는 다 털어놓겠다는 듯 쏟아냈다. “1993년까지 여기서 뽑은 아편도 리원환이 몇 푼씩 주고는 다 걷어갔다.” 미국 정부는 1972년 치앙마이에서 아편 26톤을 불태운 쇼 대가로 국민당한테 1백만 달러를(2018년 기준 65억원) 뿌렸다. 그날 아편에서 손을 씻는다고 선언한 리원환이 1990년대까지 마약사업을 했다는 증거다. “리원환 아들과 딸이 여기 왔을 때 아무도 안 내다봤다.” 절절이 한 배인 로타루 말이 끝없이 이어진다. 말 한마디 들어줄 사람 없는 국경의 외로움이 참 깊었던 모양이다. 버림받은 사람의 땅, 그 국경을 따라 땅거미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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