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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데스크에서] 해고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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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진중언 산업1부 차장


'직장인의 별'이라는 대기업 임원이 '임시 직원'의 준말이라는 것은 오랜 우스개다. 2000년 이후 16년 동안 30대 대기업 계열사의 CEO급 임원 2504명의 임기가 평균 2.5년이라는 조사도 있다. 조사 대상자의 18%는 임기 1년을 못 채웠다.

아무리 파리 목숨이라도 회사가 임원을 경질할 땐 합당한 절차와 근거가 있어야 한다. 구성원이 수긍할 만한 인사(人事)는 조직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되지만, 반대라면 향후 조직 운영에 독(毒)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회사를 떠나는 선배·동료를 보면서 직원들은 수년 뒤 자신의 '불안한 미래'를 떠올린다. 조직엔 떠나는 자와 남는 자에 대한 뒷말만 무성해진다.

그런 점에서 지난 19일 대우건설이 단행한 임원 인사가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있다. 이 회사의 대주주인 한국산업은행은 퇴근 시간에 대우건설 본부장급 임원 총 12명의 절반인 6명을 경질했다. 해고 통보는 '야간 습격'처럼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저녁 약속 장소로 이동하다가 자신이 '잘렸다'는 소식을 들은 임원도 있다고 한다. 올 2월 초 호반건설에 회사를 파는 작업이 무산된 데 대한 문책(問責)성 인사라는 얘기가 파다하다.

문제는 대다수 직원이 "이번 인사가 부당하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대주주(한국산업은행)의 갑질' '인사 횡포' '일방적 책임 전가' 같은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경영 총책임자인 한국산업은행 출신 사장 직무대행이 인사 대상에서 빠진 걸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매각 무산의 빌미가 된 모로코 사업 부실(不實)에 책임이 있는 담당 본부장이 유임된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산업은행은 올 2월 대우건설 매각이 무산되고서 "기업 가치를 높여 재매각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대우건설 내부에선 "상당수 직원이 정리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직(離職)을 고민하는 사원·대리급 직원들도 적잖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직과 사람을 관리하는 리더 입장에서 '해고의 기술'은 빼놓을 수 없는 용인술(用人術) 요소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트윗으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경질해 국내외의 비판을 자초했다. 영국 BBC는 바람직한 해고법으로 '반드시 얼굴을 보고 통보하라' '상투적 표현을 피하라' '책임을 떠넘기지 마라' 등을 제시한다.

구조조정은 필연적으로 인력 감축을 수반한다. 기업과 임직원이 목표를 공유하며 그에 따르는 고통을 진정성 있게 분담할 때 구조조정은 성공할 수 있다. 전(前) 직장을 '친정' 또는 '원수'로 여길지는 기업 하기에 달려 있다. 지금은 '해고'에도 품격과 예의가 필요한 시대이다.

[진중언 산업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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