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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백영옥의 말과 글] [39] ‘시끄러운’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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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백영옥 소설가


얼마 전 우연히 동영상 하나를 봤다. 충주 성심학교 아이들 얘기였다. 이곳은 충북 지역 청각장애 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교로, 인접 도시 청주에 사는 아이들은 62㎞를 2시간 동안 달려 충주까지 통학한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아이들에게 이 2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길고 답답한 통학길이다. "친구들끼리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재밌게 학교를 오갈 수 있지 않을까요?"

'스케치북 윈도우'는 이런 아이들을 안타까워한 선생님의 사연을 바탕으로 구현됐다. 비가 오거나 눈 내리는 날, 차창(車窓)에 뿌옇게 앉은 김 위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렸던 기억, '스케치북 윈도우'는 우리의 어린 추억을 소환해낸 기술이다.

고요한 등굣길, 창문을 내다본 아이들 눈에 갑자기 뿌연 김이 서리고 "석훈아, 안녕~ 나랑 놀래?"란 글자가 뜬다. 놀란 아이가 창문에 손가락으로 "안녕?" 하고 답한다. 한 아이는 창문 위에 "엄마 사랑해요!"라고 쓰고, 창가에 맺힌 아이콘을 누른다. 그렇게 엄마는 일하다가, 아빠는 회사에서, 아이가 찍은 사진과 사랑의 메시지를 받는다.

이토록 '시끄러운 침묵'을 본 적이 없다. 아이들 마음속에는 재잘재잘 얘기꽃이 피고, 입가에는 웃음꽃이 크게 피었다. 아이들의 사진과 메시지를 받아 본 엄마와 아빠 얼굴을 보다가 내 마음도 뭉클해졌다.

한때는 내가 장미가 아니라, 길가에 핀 흔한 들꽃처럼 느껴져 속상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기억했으면 한다. 중요한 건 장미냐 들꽃이냐가 아니라는 걸. 그것이 무엇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이 어떤 것이든 활짝 피어나는 것들 속엔 감동이 있다. 예쁘고 다양하게 피어나는 아이들 얼굴을 보는 내내 행복했다.

‘재잘재잘 스쿨버스’라는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한 자동차 회사의 연구·개발 아이디어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은 기술이다. 기술이 선(善)한 인간의 마음을 만났을 때,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또 다른 모습의 천국일 거다.

[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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