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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책과 미래] 무지를 가르쳐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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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무지(Ignorance).

미국 컬럼비아대에 2006년부터 개설된 강좌다. 제목이 흥미를 끈다. 강좌에서는 교수가 이미 아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여러 분야의 유명 과학자들을 초빙해서 자신이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도록 한다. 지금 자신이 알고 싶은 것은 어떤 것인지,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하면 무슨 문제가 있는지 등을 강의하는 것이다. 이 강좌를 통해 학생들은 인간이 어디까지 아는지,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더 알 수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

에지(Edge).

1996년에 출범한 미국의 비공식 지식인 모임이다. 모임 취지는 간단하다. 한 분야에서 정점에 이른 이들을 한 장소에 모아놓고 서로 이야기하도록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것이다. '지식의 지휘자'로 불리는 편집자 존 브로크먼은 자신이 보유한 '세상에서 가장 비싼 주소록'을 활용해 이 모임을 성사시켰다. 리처드 도킨스, 재러드 다이아몬드, 리처드 니스벳,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등 쟁쟁한 석학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모임에서 주고받는 것은 주로 질문들이다. 질문을 하려면 자신이 무엇을, 어디까지 아는지를 알아야 한다. 못내 궁금하지만 아직 해결하지 못한 질문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확인한 후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그 너머로 나아가는 데 도움을 얻으려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모르는가.'

인공지능의 세상에선 무지를 배우는 것이 점점 중요해진다. 인간이 아는 대부분의 것은 클라우드에 이미 들어 있는 세상이다. 알파고가 보여주듯 인공지능은 인간이 아는 것은 이미 모두 알고 있으며, 데이터만 충분하다면 인간이 모르는 것조차 알 수 있다. 단순히 무엇을, 얼마나 아느냐가 인간 능력의 척도였던 시대가 지나는 중이다. 청년 시절의 시험성적으로 성공을 보장받았던 수험 엘리트의 몰락이 눈앞에 있다.

'지식의 착각'을 쓴 스티븐 슬로먼과 필립 페른백에 따르면 무지를 안다는 것은 지식의 한계까지 나아가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행위다. 미지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왜'라고 묻는 것이 핵심이다. 검색과 추천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지식의 가치는 제로에 가깝게 떨어진다. 구글이 아는 것은 모두가 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오늘날 가치가 있는 것은 무지를 앎으로 바꾸는 능력이다. 이것이 창조의 진정한 정체이기도 하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안다"고 했다. 이러한 비판적 태도가 서양철학 전체를 일으켰다.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야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 아이들한테 무지를 가르쳐야 하는 이유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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