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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김홍진의 스마트경영] 국가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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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국가 권력기관이 기업인들의 배임 혐의를 밝히기 위해 기업 인수가격의 적정성까지 문제 삼으며 따지기 시작한 지 여러 해가 됐고, 굵직한 사건도 여럿 있었다. 기업의 전략적인 판단에 대해 단순한 법적 잣대를 들이대다 번번히 패소하곤 했다. 원칙적으로 기업 경영자에 대한 판단은 이사회의 몫이다. 같은 논리로 대통령을 포함해 정치권의 잘못된 판단으로 국가에 입힌 손해는 국회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

최근에는 ‘공정’을 내세워 기업활동을 여러 가지로 제약하고 있다. 심지어 편의점의 개점시간까지 정하려 하고 있다. 국민의 통신비 부담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요금 인하를 압박하고, 5G 통신을 위한 시설 공유 정책으로 KT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다이소라는 저가상품 유통점에 대해 문구 판매를 제한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동네 문구점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다이소에 납품하고 있는 수백개 중소업체, 가맹점을 운영하는 중소상인 등 또 다른 중소영세사업자의 피해와 소비자의 권리를 무시한 정책이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부당한 인사개입은 말할 것도 없다. 신입직원 채용뿐 아니라 임원의 선정에까지 끊임없이 개입하고 있는 정황이 계속 밝혀지고 있다. 출점, 사업 업종, 요금, 임금, 인사, 거래형태, 고용형태 등 거의 모든 기업 활동에 대해 정부의 승인과 지도를 받아야 할 지경이다.

국가가 디바이스나 콘텐츠 개발 같은 사소한 분야의 R&D까지 직접 기획하고 지원하기 위해 엄청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투자를 하고, 각종 제도를 동원해 부동산 시장에도 개입하고 있다.

시장개입은 주로 환율, 세율, 금리 등을 통해 큰 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개별 기업의 사업에 대해서까지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자유경제 체제에서는 드문 일이다. 이런 시대 흐름이 있다 보니 통신서비스를 다시 국유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국민들에게 사회주의적인 경제 운용의 환상을 심어서는 안 된다. 시장 자본주의가 일부 잘 작동되지 않는다고 해서 국가가 직접 모든 걸 결정하고 운용하려는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국가의 정책 결정과 집행이 반드시 공정하게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효율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국가가 있어야 할 곳엔 없다. 국민이 이념과 이해관계로 갈라져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골목길 주차처럼 안전을 저해하는 무질서와 불법을 바로 잡는 일에는 공권력이 없다. 가짜 상품, 불량식품을 판매하는 노점이 넘쳐 나도 손을 놓고 있다. 시민의 광장이 특정세력과 집단에 의해 장기간 점유되어도, 공권력에 도전해 질서를 지키지 않아도 단호한 집행이 없다.

조선업과 한국GM 사태에서 보듯이 산업구조조정 같은 뼈를 깎는 고통이 따르는 일에도 정치적 고려 때문에 단호하게 나서지 못한다고 의심하는 시선이 있다. 매번 정부가 눈치를 보다가 시기를 놓치고 화를 키우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정부가 국가가 할 일을 챙기기 보다는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일을 더 좋아하는 듯하다. 그것도 잘 하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정부는 직접 사업을 챙기지 말고 좋은 사업이 많이 일어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에 그쳐야 한다. 민간의 자유를 확대하고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안위를 지키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단호한 룰과 따뜻한 보호의 틀 속에서 민간의 창의가 발현되어야 국가가 발전할 수 있다.

김홍진 전KT사장(ho123j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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