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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사설] 이 정부서도 시작된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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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주미(駐美) 경제 공사(公使)직에 응모한 대학교수를 보수 단체에서 일한 경력을 문제 삼아 탈락시켰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경제공사 심사에서 1등을 했던 교수가 전화로 검증받을 때 녹음된 내용에 따르면, 청와대 측은 그의 보수 단체 활동 내용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다. 청와대는 "전문성은 교수님만 한 분이 없는 것 같다"면서도 "보수적인 단체에 계시다가 왜 갑자기 이 정부에서 경제공사로 나가려고 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주미 경제공사는 대사관에서 통상과 관련, 실무적 일을 처리하는 국장급 자리다. 주미 대사 휘하의 여러 공사 중 한 명일 뿐이다. 상대 국가와의 무역에서 이익을 극대화하는 게 최대 목표인 통상에서 개인적 정치 성향을 왜 문제 삼는지 알 수 없다. 트럼프발 무역 전쟁으로 통상 분야는 전쟁터와 다름없게 됐다. 심각한 상황이다. 지금 우수한 인재를 뽑아 통상 분야에 배치하는 것보다 정치 성향이 더 중요한가.

청와대가 이 사람에게만 정치 성향을 문제 삼았을 리는 없다. 아마도 주요 공직자 임명 전에 대부분 정치 성향을 따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이른바 '블랙리스트'와 다를 것이 없다. 명단을 만들지 않았을 뿐 본질은 같다. 현 정권은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를 '조직적 범죄'라면서 비난해왔다. 이 때문에 감옥에 간 사람들도 여러 명 있다. 주미 경제공사 문제가 만약 다음 정부에서 법정에 서게 될 때 다른 판단이 나오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4월 대선 직전에 "다시는 이와 같은 (블랙리스트) 범죄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올해 1월엔 '블랙리스트 피해 문화예술인'을 직접 만나 "블랙리스트 이야기를 듣거나 피해 입으신 분들을 만나면 늘 죄책감이 든다"고 했다. 그런 정부라면 통상과 같은 분야까지 정치 성향을 따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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