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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한채윤의 비 온 뒤 무지개] 공작을 걱정하는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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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번 칼럼은 사건 하나가 또 다른 사건 하나를 덮어버릴 수 있는지 실험해보는 마음으로 썼다. 공작이나 음모를 걱정하는 분들이 많은데 한 가지 확인해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정의와 평등에 관심이 있고 폭력과 차별에 반대한다면 걱정할 건 없다.



한겨레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3월14일에 검찰에 소환되었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DAS)의 실소유주라고 확신하는 듯하다. 2007년 대통령 선거 때부터 불거졌던 의혹이 이제야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게 될까. 많은 국민들은 이 전 대통령이 검찰의 포토라인에 서는 이날을 기다려왔을 것이다.

그가 밤샘 조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간 그날, 337개의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 문화를 바꾸기 위한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을 공식 출범시켰다. 이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마사지걸 고르는 법’ 등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이런 말을 하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아, 이제 한 시대가 바뀌는 것을 진정 보고 싶다.

이 전 대통령은 110억원대의 뇌물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데 검찰 조사에서 딱 1억원만 인정하고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는 자신은 아는 바가 없다고 부인했다고 한다. 이외 비자금 350억원을 조성한 혐의, 그리고 청와대 문건을 불법으로 반출해 영포빌딩 지하 창고에 숨겨두어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 등이 더 있다. 그래서 조사를 담당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증거 인멸 등을 우려해 16일에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고 피력했고 검찰총장은 깊은 고심에 빠졌다고 한다.

같은 날, 한국 정부는 제37차 유엔 인권이사회 총회에 참석해서 2017년에 받은 유엔 인권권고안 218개 중에서 97개의 권고는 불수용한다고 밝혔다. 특히 낙태죄 폐지, 대체복무제 도입, 차별금지법 제정 등과 함께 성소수자의 인권과 관련된 23개 조항이 전부 불수용 목록에 포함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의 시민/인권운동계도 깊은 시름에 빠졌다.

그러던 중 검찰이 마침내 19일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공교롭게도 또 같은 날, 성추행 의혹으로 정봉주 전 국회의원의 더불어민주당 복당이 좌절되었고,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성폭력 문제로 두 번째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다.

전직 대통령 구속을 둘러싼 신경전이 치열한 와중에 연일 이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김윤옥 여사도 여러 차례 뇌물을 받았다고 하는데, 아들인 이시형씨가 2010년에 아파트 전세금을 마련할 때 쓰인 돈 중에 일부가 김윤옥 여사가 관리한 불법 자금이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권력이 국민에게서 온 것임을 알고 있다면 권력을 가진 자로서 사사로이 이익을 취하진 못했을 것이다. 연일 계속된 권력의 사취 문제는 단지 이 전 대통령과 그 일가만의 문제는 아니다. 권력의 세습을 공고화하는 악습은 21일 서울시 의회에서도 반복되었다.

평소에는 앙숙 관계로 알려진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한마음으로 협력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서울시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제안한 4인 선거구를 모두 2인 선거구로 쪼개는 조례안을 다른 중소 정당 의원들과 시민들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날치기로 통과시킨 것이다. 2인 선거구제는 1등과 2등만 당선되는 것이니 결국 거대 정당의 후보들에게 유리하다. 민의를 폭넓게 반영하는 비례민주주의의 실현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일에는 민첩하게 대응하는 모양새다.

이번 칼럼은 사건 하나가 또 다른 사건 하나를 덮어버릴 수 있는지 실험해보는 마음으로 썼다. 공작이나 음모를 걱정하는 분들이 많은데 한 가지 확인해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정의와 평등에 관심이 있고 폭력과 차별에 반대한다면 걱정할 건 없다.

우리 사회의 주요한 권력형 비리 사건들은 쉽사리 잊히거나 묻히지 않는다. 그런 사건들은 뿌리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악은 다른 악으로 이어져 있게 마련이고 어디서든 문제가 불거지게 마련이라 비판의 목소리는 다양할수록 좋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막아서 자신의 말에 집중하게 만드는 그것이 바로 부패한 권력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법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을 결정할지 여부는 곧 결정될 것 같다. 마침 3월23일 금요일 저녁에 ‘성차별 성폭력 끝장문화제’가 청계광장에서 열린다고 한다. 정의와 평등이 실현되는 사회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나누기에 더없이 좋은 자리다. 부디 하릴없는 공작이나 음모 운운은 접어두고 광장으로 나오길 바란다. 당신들이 권력에 취해 부패한 것이 아니라면 당신들이 원하는 세상과 내가 원하는 세상은 아마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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