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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지휘계 신데렐라? 나는 단원들 재능 찾는 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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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필 새 음악감독 얍 판즈베던… 번스타인 권유로 지휘자의 길로

연봉의 15% 자폐아 재단에 기부 "아빠 마음으로 뉴욕 필 이끌죠"

2016년 1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차기 음악감독으로 얍 판즈베던(van Zweden·58)이 선정됐을 때 세계 음악계가 놀랐다.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에서 16년간 악장으로 활약했지만 지휘자로서는 무명(無名)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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얍 판즈베던은“90%를 얻으려면 110%를 쏟아부어야 하는 게 예술”이라고 말했다. /IMG아티스트


쉰여덟에 '지휘계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판즈베던이 리카르도 무티에 이어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지휘하려고 서울에 왔다. 20일 밤 경기필과 첫 리허설을 하고 마주한 판즈베던은 빡빡 민 머리에 우락부락한 생김새가 짙푸른 눈동자와 어우러져 신비한 분위기를 풍겼다.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에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 뉴욕 줄리아드 음악원에 들어간 판즈베던은 3년 뒤 열여덟 나이로 세계적 교향악단인 RCO의 최연소 악장에 낙점돼 화제를 모았다.

지휘로 전향한 계기는 레너드 번스타인 때문이다. 베를린에서 만난 번스타인은 "넌 타고난 리더"라며 지휘를 권했다. 서른일곱에 일급 악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삼류 지휘자의 삶을 시작했다. 네덜란드 라디오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 미 댈러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객원 지휘자,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맡으며 바닥부터 다졌다. 홍콩에선 4년에 걸쳐 바그너의 '링' 시리즈를 완료하며 자신을 증명해 나갔다.

지휘에 매진한 바탕엔 아들이 있다. 사 남매의 아빠가 됐지만 1995년 아들 벤자민이 자폐증 진단을 받았다. 그는 아들에게 날마다 동요를 불러줬다. 대신 마지막 가사는 일부러 빼먹고는 "벤자민, 네가 한번 불러봐" 하며 말을 하게끔 유도했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던 벤자민이 마침내 내뱉은 첫 단어는 'ball(공)'. 7년 만의 기적이었다. "생의 무대 위에서 어느 쪽으로 가야 맞는지 가르쳐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어요. 선택은 내 몫이고, 그 후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닥치는 대로 겪어낼 수밖에 없었죠. 그게 곧 음악이자 예술이란 걸 알았어요."

1997년 아내와 손잡고 '파파게노 재단'을 세웠다. 음악 치료사 35명과 함께 자폐아 가정을 찾아가 노래로 소통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연봉의 15%를 해마다 재단에 기부하고, 장애아들을 위한 기금도 250만달러(약 27억원) 모았다. "우린 모두 자폐아적 기질이 있어요. 연주자는 악기로, 기자는 글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잖아요?" 그는 "벤자민을 보는 아빠의 마음"으로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보기 시작했다. "'행복한 탐정'이 되자고 마음먹었지요. 단원들의 숨겨진 재능을 끌어내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 같은 기쁨을 음악에 실어보자고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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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임기를 시작한 판즈베던은 뉴욕 필에 인사하러 갔다가 단원들에게 둘러싸여 5분 넘게 환영 박수를 받았다. 부악장 미셸 킴은 "단원들이 합심해 반긴 지휘자는 그가 처음이었다"며 "뜨거운 공붓벌레인 얍은 구석구석 모르는 게 없어 좀 피곤하지만 단원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다"고 했다. "매일 새로운 걸 배운다는 각오로 임해요.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을 200회 넘게 연주했는데도 늘 새 곡처럼 대하는 이유죠.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저의 음악적 경력은 끝나는 겁니다."▷22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4일 오후 5시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031)230-3295



[김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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