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35→7→0’…서울에서 사라진 ‘4인 선거구’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35→7→0’

지난 20일 서울시의회는 당초 35곳으로 논의되던 4인 선거구를 ‘0곳’으로 최종 결정했다. 4인 선거구는 한 선거구에서 4명의 의원을 뽑는 선거제도다. 현재 국회의원 선거나 시·도 의원 선거는 한 선거구에서 1명의 의원만 뽑는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자치구나 시·군의회의 기초의원 선거는 한 선거구에서 2~4인을 뽑을 수 있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다. 2인까지 당선시키면 2인 선거구, 4인까지 당선시키면 4인 선거구다. 이제 서울에는 4인 선거구가 없다.

그럼 몇 명을 당선시킬지는 누가, 어떻게 정하는 것일까. 공직선거법 26조는 “하나의 자치구·시·군의원지역구에서 선출할 의원 정수는 2인 이상 4인 이하로 하며, 지역구의 명칭·구역·의원 정수는 시·도조례로 정한다”고 되어있다. 자치구·시·군에서는 ‘공정한 선거구 획정’을 위해 별도의 선거구획정위원회를 두도록 되어있다. 자치구·시·군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는 11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하되, 학계·법조계·언론계·시민단체와 시·도의회 및 시·도선거관리위원회가 추천하는 사람 중에서 시·도지사가 위촉한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거구획정위가 획정안을 만들면 기초의회에서는 이를 그대로 수용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공직선거법 24조의3 6항은 “시·도의회가 자치구·시·군의원지역구에 관한 조례를 개정하는 때에는 자치구·시·군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의 선거구획정안을 존중하여야 한다”고 되어있다.

4인 선거구가 0곳으로 최종 결정된 서울시의회의 ‘서울특별시 자치구의회의원 선거구와 선거구별 의원 정수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은 선거구획정위의 안을 얼마나 존중한 것일까. 당초 서울시선거구획정위가 만든 초안에서 4인 선거구는 35곳이었다. 하지만 서울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의 검토를 거치면서 4인 선거구는 7곳으로 대폭 줄었다. 시의회 행자위는 14일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제출한 선거구획정 심사 보고서에서 ‘획정위원회는 당초 2인 선거구를 4인 선거구로 대폭 확대(35개) 하기로 하였으나, 법적기준에서 조정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2인 선거구를 병합해 4인 선거구를 무리하게 도입하는 것에 대한 많은 기관의 반대 의견이 있어 최종안에는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시범 도입하는 안으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4인 선거구를 하면 표의 등가성도 떨어지고, 시민들의 의사도 제대로 대표하기 어렵다”며 “소수 정당이 대거 의회로 진입하면 모를까, 그렇지 않을 경우 실제 의회를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 선거구당 1명만 당선 가능한 소선거구제는 탄탄한 지역기반과 조직력을 갖춘 거대 정당에 유리한 제도다. 중선거구제에서도 2인 선거구일 경우 집권당과 제1야당 등 거대 정당이 한 자리씩 차지할 가능성이 높지만, 3~4인이 당선 가능할 경우 원내 진입이 어려운 소수정당의 기초의회 진입 문턱이 낮아진다. 서울시의회 행자위가 제출한 보고서에도 4인 선거구에 찬성한 정당은 소수당인 정의당과 민중당이었고 부분 찬성 및 반대 의견을 표한 정당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반대 의견을 표한 정당은 민주당과 한국당이었다. 현재 서울시의회 의원 수는 총 99명이다. 더불어민주당 66명, 자유한국당 24명, 바른미래당 8명, 민주평화당 1명으로 구성돼 있다. 99명 중 90명이 민주당과 한국당 소속 의원들인 것이다.

20일 열린 시의회 회의에서는 4인 선거구는 7곳으로 수정된 안에서 다시 한 번 수정된 ‘0곳’으로 통과됐다. 이날 회의는 시작 10분 만에 자유한국당 김현기 시의원의 제안으로 정회됐고, 30분 뒤 다시 열렸지만 선거구획정안 수정안에 합의한다는 사실이 선언되고 바로 끝났다. 이 과정에서 4인 선거구를 없애는 획정안 수정안에 반대하는 바른미래당 시의원 일부가 의장석을 점거하고, 민주당과 한국당 의원들이 이들을 끌어내리는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정의당 서주호 서울시장 사무처장은 “찬반토론도 제대로 없이 의장이 쭉 (수정안을) 읽었고, 수정안이 제대로 모니터에 비쳐지지도 않았다”며 “사실상 날치기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법적으로 박원순 서울시장은 조례에 대해 재의해달라고 시의회에 요청할 수 있지만, 그 시한은 21일까지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날 “재의 요구를 하더라도 시간 제약에 걸리는 데다, 시의회 구조상 통과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이유로 재의 요구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 사무처장은 “가장 답답한 것은 오늘도 (청와대가)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변경하고 가겠다고 했지만 실제 지방의회의 현실은 처참하다”며 “지방의회를 개혁하는 유일한 방안은 진보정당과 풀뿌리 정치활동을 했던 사람들이 지방의회로 들어가는 것인데, 근본적으로 (진입을) 차단하고 더 높은 성벽을 쌓고 있다”고 말했다.

거대 양당의 반대로 4인 선거구가 무산되자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소수 야당들은 21일 일제히 “(두 당은) 적대적으로 싸우다가도 기득권 지키기에는 찰떡같이 담합한다”며 비판했다.

바른미래당 박주선 공동대표는 2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전국적으로 기초의원 4인 선거구가 거의 좌절되고 폐지됐다”며 “거대 양당은 탐욕의 카르텔의 정점으로, 지자체장과 지방의회를 독과점 해 지역 토호세력과 결탁해 온갖 특권적 이익을 누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대표는 “양당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와 공존의 가치, 그리고 자유로운 경쟁의 원리를 여지없이 져버리는 세력들”이라고 말했다.

비판은 특히 한국당과 손을 잡은 민주당에 집중됐다.

민주평화당 조배숙 대표는 “소수당을 말살하고 기득권을 독식하겠다는 반민주적 작태가 개탄스럽다”며 “적폐청산을 외치는 민주당이 선거구 획정에서는 적폐세력과 동조했다”고 비판했다.

정의당 심상정 전 대표는 “촛불의 뜻으로 과감한 정치개혁을 이뤄내자던 여당 정치인 분들은 다 어디 가셨냐”며 “민주당 지도부의 분명한 대국민 사과와 시정방안 제시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