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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열린 시선/김종진]불행한 역사도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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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김종진 문화재청장


한 시대를 관통해 온 모든 문화유산은 역사를 기록한다. 이것이 우리가 문화유산을 보호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역사엔 물질과 정신을 통째로 빼앗겼던 일제강점기가 있었다. 그다지 오래전도 아닌 당시의 역사 속 현장에서 우리는 독립운동에 앞장선 선열들의 모습을 마주하곤 한다.

바로 얼마 전에 있었던 3·1절 기념식에서도 그러했다. 이번 기념식 장소는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역사 현장인 서대문형무소였다. 서대문형무소는 일제강점기 동안 해마다 2600여 명이 투옥됐고, 김구 한용운 안창호 등 수많은 독립지사들이 옥고를 치른 곳이다. 문화재청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이곳에 1936년 당시의 배치도를 구해 형무소 구치감과 의무실, 병감 등 상징적인 건물들을 복원시킬 계획이다.

서대문형무소 말고도 그 가치를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쓸쓸히 100년에 가까운 긴 시간이 지나는 동안 국민들의 마음에서 잊힌 채 지나온 공간과 유물들이 너무나 많다. 다음 달 13일은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99년이 되는 날이다. 광복 후 임시정부가 국내로 들어오면서 의정원의 기록 문서들도 차례대로 들어왔다. 특히, 의정원 의장을 네 번 지낸 홍진 선생이 가지고 온 의정원 관서들은 그가 별세한 후 유족들이 보관하다가 1967년 국회도서관에 기증됐다. 총 16박스에 담긴 이 기록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핵심 역할을 이해하면서 독립 운동사를 연구하는 데도 대단히 중요한 문서다. 이 문서들을 문화재로 등록하는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요즘 제도가 미치지 않는 곳에 방치된 항일 역사 기록과 유산이나 인물이 없는지 사각지대를 들여다보고 있다. 앞으로 그 가치를 재조명해 단단하게 보호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등록된 문화재도 정비해 국민의 생활 속으로 깊숙하게 자리할 수 있도록 역사 교육의 장을 마련할 것이다. 지금까지 문화재로 지정 및 등록된 항일독립 문화유산은 210건에 달한다.

그래서 국가의 적극적인 움직임을 통해 잊고 있던 과거와 이름 없이 활동하다 스러진 수많은 독립지사들의 뜨거웠던 정신이 현재를 사는 우리 곁에서 되살아나기를 바란다.

김종진 문화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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