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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가수 ‘윤상’이 본명 ‘이윤상’ 대신 가명을 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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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장 입장하는 윤상 단장(왼쪽)과 1980년 11월 14일 유괴된 이윤상 군(오른쪽) [연합뉴스, JTBC 뉴스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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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겸 작곡가 윤상이 본명 '이윤상' 대신 '윤상'이라는 가명을 쓰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가 공개됐다.

20일 JTBC 뉴스룸에서는 최근 남북회담 수석대표 겸 예술단 음악감독을 맡게 된 '윤상'의 '성(姓)' 논란을 언급하며 잘 알려지지 않은 윤상의 이야기를 공개했다.

방송에 따르면 윤상은 1980년 자신과 이름이 같고, 나이가 비슷했던 '이윤상' 군에게 발생한 비극적 사건에 마음이 쓰여 자신의 성 '이'를 떼고 대중 앞에 섰다.

'이윤상유괴살인사건'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1980년 11월 13일, 14세 중학생 소년 이윤상 군이 같은 학교 체육 교사에게 유괴됐다가 살해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은 1년여 간의 공개수사에도 실마리가 풀리지 않아 온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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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이윤상유괴살인사건 관련 기사 [JTBC 뉴스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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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 씨까지 나서서 "살려 보내면 너도 살고, 죽여 보내면 너도 죽는다"는 범인을 향한 대국민 담화문까지 발표했다.

하지만 이 군을 납치한 유괴범은 62회에 걸쳐 협박편지와 전화를 걸고, 4000만원을 요구하면서도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아 모두의 애를 태웠다.

결국 사건 발생 1년 뒤인 1981년 11월 30일, 유괴범이 경찰에 붙잡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군은 가족의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유괴범은 이군이 다니던 중학교의 체육 교사로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이군을 납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유괴범은 이군을 감금한 뒤 질식사시켜 경기도 가평군 북한강 둔치에 암매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유괴범은 계속 항소했으나 대법원에서도 사형 판결이 났고, 결국 1983년 7월 사형이 집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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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뉴스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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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은 1968년 생으로 알려진 가수 '윤상'에게는 자신과 이름이 같고, 자신보다 한 두살 위인 이군의 사건이 트라우마처럼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윤상이 우리 측 예술단의 평양공연을 위한 남북 실무접촉의 남측 수석대표로 선임되며 때아닌 성(姓) 논란이 불거졌다. 논란은 한 보수 활동가가 윤상의 선임 배경에 대해 윤상의 정체에 의혹을 제기하며 시작됐다.

그는 SNS에 "남북 실무접촉의 남측 수석대표로 윤상씨라면 김일성 찬양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윤이상, 5·18 광주폭동 핵심으로 보상받고 월북한 대동고 출신 윤기권, 김일성이 북한에서 만든 5·18 영화의 주인공 윤상원. 이들 중 누구와 가까운 집안입니까?"이라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윤상의 지인인 유명 작곡가 김형석이 "윤상의 본명은 이윤상입니다만"이라는 답글을 남기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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