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30 (화)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중독성 강한 휴대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주민지원센터에서 토요일마다 여는 공부방에 처음 나온 남매는 한참 동안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낯선 이가 내준 의자에 마지못해 앉은 일곱 살짜리 동생은 집에 가겠다고 생떼를 부리는 오빠를 묵묵히 바라봤다. 한 살 많은 오빠는 한참 동안 달래고 나서야 만화영화를 보는 아이들과 합류했다. 오빠가 방에 들어가자 동생은 마치 어른처럼 중얼거렸다.

경향신문

“휴대폰 때문이에요.”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말하는 모습이 귀여운 토끼 같은 아이에게 홀딱 반한 어른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우리 오빠는 휴대폰만 갖고 놀아요. 하루 종일 휴대폰 게임만 해요. 그걸 못하면 화를 내요. 큰일이에요.”

일곱 살 아이는 요즘 애들을 걱정하는 노인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가 어찌나 진지한지 어른들은 웃음을 꾹 참으면서 그러게 휴대폰이 애들 다 버렸다며 맞장구를 쳤다. 동생은 자신이 염려한 대로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나와 시무룩하게 앉아 있는 오빠한테 물었다. 영화가 재미없어? 오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영화가 재미없는 탓일 것이다.

남매는 유부초밥을 만들고 있는 주방을 기웃대다가 같이 만들어보겠냐는 말에 얼른 달려들었다. 오빠 아이는 유부초밥을 조물조물 만들다가 하나 집어먹어보더니 이리 말했다.

“정말 맛있어요. 맛이 무한대예요.”

아이는 점심을 먹은 뒤 아이들과 마당에서 뛰어놀았다. 땅을 파고, 공을 차고, 술래잡기를 하면서 아이는 땀을 뻘뻘 흘렸다. 아마도 아이는 제 몸을 움직이면서 대신 움직여 주고, 대신 놀아주는 휴대폰 따위는 까맣게 잊었을 것이다. 요즘 아이들도 마당에 삽 하나 공 하나만 던져줘도 재미있는 놀이를 만들어내는구나, 동네 골목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사라진 것은 휴대폰 때문이 아니구나, 나는 술래잡기를 하느라 마당 구석구석에 허술하게 몸을 숨기고는 키득대는 아이들을 보면서 습관처럼 휴대폰을 꺼냈다. 오전에도 봐서 눈에 익은 기사들을 한참 동안 훑어보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휴대폰 때문에 큰일이라던 일곱 살짜리가 나를 힐긋 본다. 나는 얼른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나야말로 정말 큰일이다.

<김해원 | 동화작가>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