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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오늘의시선] 황제·차르 탄생… 한반도 비핵화 이상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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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러, 갑작스러운 대화 무드에 당혹감/‘패싱’ 우려 양국 방해 않도록 잘 살펴야

한반도에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작년 12월까지만 하더라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극에 달했다. 그런데 갑자기 북한이 비핵화를 들고 나왔다. 하늘이 두 쪽 나기 전에는 절대로 비핵화하지 않겠다던 북한이기에 더욱 놀랍다. 4월 말에 남북 정상회담도 열리게 됐다. 남북 정상회담만이 아니다. 북한은 비핵화 협의와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해 미국과 대화하겠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 ‘늙다리 미치광이’라고 불렀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수용함으로써 5월에는 세기적 만남이 예약됐다. 상향식 회담으로는 하세월이라는 인식하에 단기간에 비핵화를 마무리하고자 하는 하향식 경로가 채택된 것이다.

비핵화 기차가 움직이자 가장 먼저 표를 끊은 국가는 일본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4월 초 워싱턴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북한과의 정상회담 의사도 밝혔기 때문에 북·일 정상회담도 열릴 수 있다. 살벌했던 북·중 관계도 북·중 정상회담으로 녹아내릴 것 같고,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북한에 러브 콜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되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가장 짧은 시간 내에 남북 정상회담은 물론 주변 4대국과도 정상회담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북한으로선 천지개벽이 아닐 수 없다.

세계일보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그럼에도 북·미 정상회담이 발표되자 정작 당황했던 국가는 중국과 러시아였다. 중국은 그동안 북한 핵문제 해법의 하나로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는 대신 한·미는 연합훈련을 중단하는 쌍중단(雙中斷)을 주장했다. 그 다음 조치로 비핵화 프로세스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동시에 논의하는 쌍궤병행(雙軌竝行)을 함으로써 핵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했다. 또한 중국은 일관되게 북·미대화를 강조했다. 그런데 북한이 중국의 쌍중단을 뛰어넘어 바로 쌍궤병행으로 직행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의 한반도 비핵화 구상도 중국과 비슷하다. 쌍중단, 남북 및 북·미 대화를 통한 관계 정상화, 그리고 다자협정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 지역 안보체제 구축 등 3단계 로드맵이다. 사실 러시아도 줄기차게 북·미대화를 강조했다. 하지만 막상 북·미대화가 정상회담으로 바로 넘어가자 러시아도 적잖게 당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 대선에서 76%가 넘는 압도적 지지로 네 번째 집권에 성공했다. 이로써 푸틴 대통령은 2000년부터 2024년까지 무려 24년 동안 러시아의 최고 지도자로 군림하게 된다. ‘강력한 러시아 건설’을 표방하는 푸틴 대통령의 당선은 가히 ‘차르의 귀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루 전에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시진핑이 만장일치로 국가주석으로 재선출됐다. 3선 연임 금지 규정을 삭제한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사실상 종신 집권의 길을 열었다.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주장하는 ‘황제의 귀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서로를 축하하는 축전을 교환했다. 지난날처럼 앞으로도 밀월을 구사해 나가자는 것이 핵심이었다.

문제는 강력한 통치 기반을 구축한 중·러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비핵화 협상 과정에 적극 개입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중·러가 대외확장 전략을 꾀할 가능성에 맞서 더욱더 국익을 지켜가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과의 힘겨루기 속에서 자신의 소외감을 괜한 트집으로 표출할 수도 있다. 자국의 이익이 비핵화 과정에서 패싱(배제)당할까 봐 불안하기 때문이다.

북·미 정상회담이 끝나면 비핵화 과정은 양자회담으로 시작해 4자 및 6자 회담으로 확대될 개연성이 있다. 비핵화의 끝자락에서 북한에 대한 체제 보장과 경제 지원을 위해 주변국들의 참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러 등 주변국의 소외감이 트집을 넘어 방해로 확대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래야 비핵화 기차가 속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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