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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청와대 “영장청구권 독점 삭제” 발표하자 검찰은 ‘술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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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안 발표에 검찰 내부 우려 기류

"토사구팽 아니냐" 자조섞인 반응도

문 총장은 박종철 열사 부친 만나

"경찰에 견제구 날린 것" 해석도

중앙일보

조국 민정수석이 2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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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규정 조항을 삭제한 대통령 개헌안을 발표한 20일 검찰 내부는 술렁였다. 새 정부 출범 직후 검ㆍ경 수사권 조정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본격적인 ‘검찰 힘 빼기’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었다.

조국(53) 청와대 민정수석은 이날 “현행헌법은 영장신청 주체를 검사로 하고 있지만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그리스와 멕시코를 제외하고는 이런 주체를 두고 있는 나라가 없다”며 “다수 입법례에 따라 영장 청구 주체에 관한 부분을 삭제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개헌이 현행법상 검사의 영장 신청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도 밝혔다. 조 수석은 “규정을 삭제하는 것은 영장 신청 주체와 관련된 내용이 헌법 사항이 아니라는 것일 뿐”이라며 “조항이 헌법에서 삭제된다 하더라도 검사의 독점적 영장 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는 현행 형사소송법은 개정 전까지는 그대로 유효하다”고 했다.

다만 발표 직후 이뤄진 질의응답에선 관련 법 개정 시 영장 청구권을 경찰이 가지는 것도 가능하냐는 질문에 “영장 청구 주체를 누구로 할지는 국회의 몫이다. 영장청구권이 헌법에서 유지되면 논의 자체가 불가능한데 (개정되면) 논의가 개시될 수 있다”고 답했다. 개헌이 이뤄지면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법 개정도 이뤄질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법조계에선 이날 발표가 정부의 주요 국정 과제인 검ㆍ경 수사권 조정을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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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본관 앞의 검찰 깃발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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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이날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내부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 서울중앙지검 부장 검사는 “(영장 청구권) 독점 규정 조항이 삭제될 경우 형소법에 규정된 검찰의 영장 청구권이 흔들리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정권의 성격이나 정치권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검찰 조직이 좌우될 수 있고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와 실정이 맞지 않은 다른 국가의 사례를 들어 조항을 삭제한다는 것도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말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아직 개헌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기는 적절치 않다”면서도 “아무런 장치를 두지 않고 헌법 조항을 삭제하면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헌법에 검찰의 영장 청구권이 명시된 것은 경찰의 영장 청구 남용이나 수사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인권침해 등을 막기 위한 ‘보루’의 성격이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서울고검 검사는 “헌법 조항이 삭제되면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구속 영장 등 구인 영장이 아닌 압수수색 영장 정도는 경찰에 넘어갈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며 “일부 검사들 사이에선 정권 초 적폐 수사 등에 매달리고 나면 결국 ‘토사구팽’의 처지에 놓이는 것 아니냔 자조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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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일 검찰총장이 20일 오후 부산 수영구 남천동 남천사랑의요양병원에 입원중인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를 만나 사과 인사를 전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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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문무일(57) 검찰총장은 박종철 열사의 부친을 만나 과거사에 대해 사과했다. 이날은 검찰이 이명박(77)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문 총장은 이날 오후 2시 부산 수영구에 있는 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박종철 열사의 부친 박정기씨를 찾아가 “과거의 잘못을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 사명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문 총장은 또 “1987년에는 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이뤘지만 지금은 어떠한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운영하며 어떠한 과정을 거쳐 성숙된 시민 민주주의로 완성해 국민들과 후손들에게 물려줄지가 우리의 과제”라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선 이날 문 총장의 행보를 두고 검ㆍ경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경찰에 견제구를 날린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당시 경찰에 의해 일어났고 이를 바로잡았던 게 검찰이란 점을 상기시키는 것 아니냔 것이다. 경찰의 권한이 비대했던 과거에 각종 인권 침해 문제가 발생한 만큼 이번 방문을 통해 검찰 차원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란 시각도 나왔다.

문 총장은 지난 13일에는 국회사법개혁 특위에 참석해 “자치경찰제 문제가 수행되지 않고서 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가면 국가적 부작용은 불 보듯 뻔하다”며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 지휘권이 현행대로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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