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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4 (화)

[무비 짬] 과거 하이틴 영화를 채웠던 싱그러운 청춘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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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 짬]

그래도 청춘에 찬사를 보낸다


청춘은 흔히 칭송 받는다. 나이가 들수록 청춘이었던 그 시절은 찰나와 같았으니, 그래서 더 아득하기만 하여 점점 미화된다. 청춘을 가리키는 말들에는 온갖 미사여구가 넘쳐나고 아쉬움이 잔뜩 묻어난다. 대부분 '청춘을 돌려다오'라 부르짖는 '어른'들의 말이다.

비록 요즘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말 했다가는 젊은 당사자들에게 지탄 받는 엄혹한 시대이기는 하나, 그렇다 하더라도 꽃봉오리에 비유되는 청춘에 찬사를 멈출 수 없다. 그 시절은 확실히 아름답고 눈부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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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진짜 진짜 잊지마(1976)'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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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열두 달 중 청춘을 가장 닮은 달을 굳이 꼽으라면 단연 3월이다. 이 3월의 느낌이 충만한 곳, 아무리 여러 곳을 떠올려봐도 3월의 교정만한 곳이 없다. 낯설고 두렵지만 따뜻하고 활기찼던 3월의 학교.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꾸게 될 꿈과 그에 따르는 기특한 다짐들이 넘쳐났던 곳이다.

공기에 온기가 제법 들어 찬 3월, 봄님이 오시고 있다. 그 핑계로, 청춘의 교정을 담아내 큰 인기를 끌었던 과거 하이틴 영화 몇 편을 소개하려고 한다. 화질은 낡았지만 푸른 내가 가득한 청춘의 싱그러움은 옛 화질을 뚫고 여전히 위력을 발한다. 70, 80년대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하이틴 영화들은 어떤 게 있었을까.

하이틴 영화로서 대중에게 거의 최초로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은 '진짜 진짜 잊지마(1976)'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이전에 '십대의 반항(1959)'이나 '얄개전(1965)', 그리고 '여고시절(1972)' 등 청춘영화로 분류할 수 있는 여러 영화들이 있기는 하다. 그래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교복을 입은 십대 아이들이 출연한 영화의 거의 최초는 '진짜 진짜' 시리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청초하고 하얀 배우 임예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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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진짜 좋아해(1976)', 정아(임예진)의 첫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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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들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가득한 학교의 다양한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하고, 기차를 탄 주인공 영수(이덕화)가 수다에 여념이 없는 한 여고생 무리를 엿보며 추억에 잠긴다. 그렇게 영화는 추억여행을 시작한다.

과거로 간 영수는 세상에서 가장 청순한 얼굴을 한 정아(임예진)를 만난다. 영수와 정아의 첫사랑은 풋풋하고 애틋하다. 그리고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으니 안타깝다.

'진짜 진짜 잊지마'가 그해 제작된 영화 중 흥행 2위를 하면서 당시 실제로도 고등학생이었던 임예진은 남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그리고 '진짜 진짜 미안해', '진짜 진짜 좋아해'로 이어지는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승승장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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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진짜' 시리즈가 흥하는 동안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고교얄개(1977)'는 더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모으며 열풍을 일으켰다. '고교얄개'는 문제아 두수(이승현)가 모범생 호철(김정훈)을 괴롭히다가 그 때문에 다치게 된 호철을 도우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든 일이 다 잘 풀려 무난하게 마무리되는 영화의 이야기는,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판타지에 가깝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한 고교생의 눈부신 한 시절을 비교적 친숙하고 편안하게 묘사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노상 얄궂은 얼굴로 철없는 고등학생의 모습을 유쾌하게 묘사한 배우 이승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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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교얄개(1977)'의 두수(이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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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수의 매력이 지금 봐도 영화 안에 가득하다. 이승현의 유니크한 얼굴과 장난기 가득한 말투, 바로 그 점이 이 영화가 서울에서만 25만명이 넘는 관객들을 불러모은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고교얄개'의 성공 이후 속편 '고교 우량아(1977)'를 시작으로 '고교결전 자! 지금부터야(1977)', '고교 유단자(1977)', '고교 고단자(1978)' 등의 아류작들이 이어진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고교 꺼꾸리군 장다리군(1977)', '얄개 행진곡(1977)', 그리고 '여고 얄개(1977)'까지 만들어진다. 70년대 후반 '진짜 진짜' 시리즈와 '고교얄개' 시리즈가 다수 만들어지며 한국 극장가는 때 아닌 하이틴 영화 전성기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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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당시 스타 반열에 올랐던 임예진, 이승현, 김정훈, 김보연, 진유영 등 젊은 배우들이 점차 나이를 먹으며 더 이상 하이틴 영화 출연이 줄어들었고, 80년대 3S 정책으로 성인 영화가 극장에서 주류를 차지하는 등 자연스럽게 하이틴 영화는 자취를 감춘다.

그러다 89년에 등장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이하 '행복은…')'가 흥행하면서 하이틴 영화를 다시 주류로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해낸다. 무엇보다 이미연이라는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88년 데뷔한 이미연은 과거 임예진을 떠올리게 하는 청순함의 대명사로 수많은 남학생들을 설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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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의 은주(이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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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행복은…'이 여주인공의 '극강' 청순함을 무기로 성공한 일면이 있긴 하나, '행복은…'은 70년대 '진짜 진짜' 시리즈나 '얄개' 시리즈와는 조금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사회문제를 제법 진지하게 담아낸 것이다.

영화는 '입시제도의 비극'을 정면으로 다룬다. '행복은…'은 고등학생들의 우정과 사랑을 유쾌하게 다루고 있는 동시에 시험과 등수, 입시에 대한 학생들의 부담감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당시 고등학생들이나 입시생을 자녀로 둔 부모들은, 여주인공이 끝내 자살하게 되는 이 영화의 결말이 꽤 아프게 다가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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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흥행에 성공한 '행복은…' 역시 상당히 많은 아류작을 낳았다. 속편인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1990)'을 비롯해서 '있잖아요 비밀이에요(1990)',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반을 찾습니다(1990)' 등 교교생들의 학교생활을 문제의식을 갖고 다룬다.

이후 교정을 배경으로 한 하이틴 영화는 '열아홉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노래(1991)'나 '지금 우리는 사랑하고 싶다(1991)',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1991)' 등 학교를 벗어나 다양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이렇게 하이틴 영화가 학교 밖으로 탈출하면서 장르의 색깔이 흐릿해지며, 하이틴 장르는 자연스럽게 한국영화에서 사라져갔다.

배우의 얼굴에 머무른 청춘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반 반짝 부흥했던 하이틴 영화는 이후에도 '여고괴담'이나 '어린신부', '말죽거리 잔혹사'나 '늑대의 유혹' 등 간간이 만들어지곤 했으나 하나의 장르로 묶기에는 서로의 유사점이 매우 취약하다.

청춘이 온전히 느껴지는 영화가 거의 사라진 지금 과거의 하이틴 영화를 다시 보면 유난히 더욱 싱그럽고 풋풋하다. 그리고 당시 배우들의 얼굴에 머물렀던 청춘의 실체가 너무 생생하게 다가온다. 지금은 대부분 중견배우로서 어머니·아버지나 회장님 역할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이다.

과거의 관객이나 현재의 관객이 이 하이틴 영화들에 보내는 열광과 애정, 그리움과 애틋함은 결국 배우의 얼굴에서 비롯하는 게 아닌가 싶다. 흘러간 세월의 안타까움과 그 시절의 아름다움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배우의 얼굴. 박제된 그들의 청춘이 부럽다.

[글/구성 : 섹션편집팀 이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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