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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안될 줄 알면서...개헌레이스 나선 청와대의 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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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20일부터 사흘간 ‘대통령 개헌안 설명회’
野 “독재적 발상”, “지방선거용”…한국당 “국회 표결 불참할 것”
전문가들 “文대통령 개헌안 발의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부결 시 개헌 열기 식을 듯”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발의할 개헌안 일부 내용이 20일 공개됐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이날 헌법 전문(前文)과 기본권에 관한 사항을 발표했고, 21일 지방분권과 국민주권, 22일 정부형태 등 헌법기관 권한 등을 각각 발표할 계획이다. 이벤트 하듯 개헌안을 사흘에 걸쳐 발표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개헌안 공개 첫날인 이날 여야는 대통령 개헌안 발의 자체와 그 내용을 두고 격하게 대립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이 개헌 발목잡기를 하고 있다”고 했고, 한국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독재적 발상” “지방선거용 정략적 개헌 시도”라며 맞섰다.

대통령 개헌안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비관적인 관측이 나왔다. 개헌을 하려면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현재 여당 의석수는 121석밖에 되지 않는다. 제1야당인 한국당(116석)은 독자 저지도 가능한 상황이다. 야당 관계자는 “청와대가 되지도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 개헌 쇼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국 민정수석이 이날 발표한 것은 개헌안 중 헌법 전문과 기본권에 대한 내용이다. 우선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를 담은 전문에 5·18 광주민주화 운동과 부마항쟁, 6·10 민주항쟁이 수록됐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정통성과 정의를 바로세우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의미한다. 조 수석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짐은 물론 법적, 제도적 공인이 이뤄진 4·19 혁명과 함께 부마항쟁과 5·18 민주화운동, 6·10항쟁의 민주이념을 명시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20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발의할 개헌안 중 헌법 전문과 기본권에 대해 발표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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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기본권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근로’라는 용어를 ‘노동’으로 바꾼다는 내용도 담겼다. 생명권·안전권·정보기본권·주거권·건강권을 신설한 것도 눈에 띄는 내용이다. 공무원의 노동3권을 원칙적으로 인정하는 내용도 수록됐다. 현행 헌법에서 기소독점주의를 나타내는 검사의 영장청구권 조항 내용은 삭제됐다. 대의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국민발안제와 국민소환제는 신설됐다.

민주당은 이날 발표된 대통령 개헌안을 환영하면서, 야당을 비판했다. 민주당은 백혜련 대변인 명의 논평을 통해 “청와대가 발표한 개헌안은 제7공화국의 새로운 시대정신과 87년 헌법이 담아내지 못했던 기본권을 폭넓게 보장하는 것으로 평가한다”며 “오늘 발표된 개헌안의 기본 틀은 대다수 국민의 의사가 반영된 것으로 그동안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된 것이고, 사실상 사회적 합의가 끝난 것”이라고 했다. 백 대변인은 이어 “‘무조건 반대하고 보자’는 자유한국당의 작태를 예상 못한 바는 아니나, 시정잡배마냥 저급한 언어로 대통령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자유한국당의 모습에서 분노를 넘어 처연함을 느낀다”며 “한국당은 더 이상 국민 외면 자초하는 정치공방을 중단하고, 국회 개헌안 성안을 위한 논의에 적극 나서길 바란다”고 했다.

앞서 우원식 원내대표도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자유한국당은 말폭탄으로 ‘국민개헌열차’ 탈선에만 목맬 게 아니라 협상에 임해야 한다”며 “개헌은 국가의 100년을 새로 설계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건 없이 협상을 시작하자”고 했다.

그러나 야당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한국당은 정태옥 대변인 명의 논평으로 “우리 자유한국당은 이번 대통령 발의 개헌에 대해서는 결연하게 반대한다”며 “만약 대통령 발의안이 국회 표결에 부의된다면 자유한국당 의원 전원은 불참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개헌안은 국회가 여야협의로 성안해야할 사안으로 대통령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대통령 발의는) 오히려 여야합의를 방해하고 개헌을 무산시키려는 의도라 아니할 수 없다”고도 했다. 신보라 대변인은 “청와대의 관제개헌안 설명은 막무가내 밀어붙이기로 국회 논의를 무시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라며 “자신들은 설명으로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국민에겐 압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했다. 신 대변인은 “이는 마감이 임박했다며 소비자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헌법을 마감임박 땡처리 상품으로 전락시키려는 청와대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도 했다.

한국당 측은 이날 발표된 개헌안의 내용적인 면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정 대변인은 “전문에 근현대의 모든 사건을 주저리 주저리 넣을 필요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특히 아직 사건의 진상이나 역사적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사건을 포함시켜서는 안 될 것”이라며 “또 좌파적 입장에서만 의미 있는 사건을 나열함으로써 대한민국 전국민의 헌법이 아니라 좌파 세력들만의 헌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직접민주주의를 대폭 강화하는 것은 촛불 포퓰리즘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것으로, 우리 헌정질서인 대의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한 원칙에 크게 어긋난다”고 했다.

바른미래당 박주선 공동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일방적인 개헌 발의를 여기서 중단해 줄 것을 엄중히 요구한다”며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는) 국회를 무시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오만이자 국민이 만들어준 국회 협치 구도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했다. 김동철 원내대표는 “사흘간 대국민 설명을 한 뒤 개헌안을 발의한다는 청와대의 태도는 오만함의 극치”라며 “청와대의 개헌 밀어붙이기는 개헌 무산의 책임을 야당에 떠넘기고 쟁점화해 지방선거에서 이용하려는 알리바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대통령 개헌안이 발의되면 정국이 경색되면서 국회에서 부결되고, 개헌 논의 자체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는 “청와대 입장에서는 국회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으면 ‘문재인 정부가 개헌에 소극적인 게 아니냐’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는 점, 국회에만 개헌 논의를 맡겨놨을 때 개헌이 모든 현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도 있다는 점 등에 염려가 있었을 것”이라며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는 (개헌이) 되든 안 되든 압박도 가하고, 대선 공약도 지키고 하는 등의 여러 정치적 계산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또 “국회 구성상 대통령 개헌안의 통과가 어려워 보이는데, 국회에서 대통령 개헌안이 부결되면 개헌 열기가 상당히 식을 것이라고 본다. 아예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다만 “그러나 문 대통령이 (야당이 요구하는) 선거구제 비례성 강화 등에 관심이 높고 책임총리제 등은 수용할 여지가 크니, 이런 것들을 받으면서 대통령 4년 중임제를 밀고 나가는 등의 협상을 통해 극적으로 타결이 될 수도 있다”고도 말했다.

[이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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