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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김기천 칼럼] '트 황상'과 '시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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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캐나다 총리) 트뤼도가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는 무역적자가 없다. 제발 그런 말 말아라’고 하더라. 나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냥 ‘당신이 틀렸다’고 했다. 트뤼도가 다시 ‘아니다, 무역적자는 없다’고 했는데 내가 또 ‘아니다, 내 느낌은 다르다’고 말했다.”

지난 2월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트뤼도 총리 사이에 오간 대화라고 한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에 출마하는 어느 공화당 후보를 위한 후원금 모금 행사에서 공개한 내용이다. 그는 “당시 보좌관들을 내보내 사실관계를 확인해보니 트뤼도 말이 맞더라”면서도 통계 작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며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미국 상무부 통계로는 미국이 작년에 캐나다와의 교역에서 28억 달러 흑자를 냈다. 상품 무역수지는 231억 달러 적자, 서비스 무역수지는 259억 달러 흑자다. 상품 무역만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맞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 해도 의미 없는 주장이다.

정상회담에서 오간 대화를 이런 식으로 공개한 것도 문제다. 따지고 보면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계속 고집 부리고 우겼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나 다름 없다. 그게 어떻게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팩트(fact)를 무시한채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트럼프 스타일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그 영향인지 미국의 통상정책도 갈수록 트럼프식 일방주의로 기울고 있다. 싱가포르 반도체 회사인 브로드컴이 미국의 퀄컴을 인수하려는 데 대해 대통령 명령으로 제동을 걸고,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국가 안보에 대한 자의적 해석과 억지 논리가 두드러진다.

미국 정부는 퀄컴 사태에 개입하면서 중국 화웨이와의 경쟁을 이유로 들었다. 재무부 산하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는 브로드컴이 퀄컴을 인수한 뒤 단기 이익을 늘리기 위해 연구개발 투자를 크게 줄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면 차세대 통신기술인 5G 개발 주도권이 경쟁업체인 화웨이로 넘어가 미국의 국가 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뉴스는 사설에서 ‘배배꼬인 논리(long and twisted chain of logic)’라고 꼬집었다. 거래 직접 당사자가 아닌 제3의 외국기업이 유리해질 수 있다는 이유로 기업 인수에 제동을 건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M&A가 확정되기도 전에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이를 금지시킨 것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선 브로드컴의 반도체칩이 화웨이의 네트워크 장비에 들어가는 등 거래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브로드컴이 중국에서 여러 건의 합작투자를 했다는 사실도 거론됐다. 중국 정부가 브로드컴에 영향력을 행사해 퀄컴 기술을 빼돌릴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정황 증거라고 한다.

그렇게 따지면 퀄컴도 매출의 3분의 2를 중국에서 올리고 있다. 브로드컴처럼 중국 기업들과 합작 투자도 했다. 심지어 미국 정부가 퀄컴의 최대 경쟁자로 지목한 화웨이와 손을 잡고 5G 기술 테스트를 시행하기도 했다. 이번에 미국 정부가 노골적으로 중국에 대한 견제 의사를 밝힌 탓에 앞으로 퀄컴이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부과와 관련해서도 미 상무부는 수입 의존도가 높아지면 미 군사력이 취약해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국방부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군사적 수요가 미국 생산물량의 3%에 지나지 않는다며 그 가능성을 부인했다.

국내 일각에서는 예전부터 트럼프 대통령을 ‘트 황상’으로 불렀다. 비아냥거리는 표현이지만 ‘엿장수 마음대로’ 논리로 세계 경제를 들었다 놨다 하는 모습에 딱 들어맞는 별명같기도 하다. ‘다른 생각’을 용인하지 않는 독선과 오만, 거침 없는 막말 등 절대 권력자의 부정적인 행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시선을 반대편으로 돌리면 진짜 황제 흉내를 내고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있다. ‘중국몽(夢)’을 내세운 중화 패권주의의 폭력성과 위험성은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훨씬 능가한다. 최소한의 설명·해명도 없이 으름장을 놓고 횡포를 부리기 일쑤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 한국이 중국의 막무가내 협박에 혹독하게 당했다.

‘산 하나에 호랑이 두 마리가 살 수 없다’는 말처럼 두 지도자는 지금 충돌 코스로 가고 있다. 한편에선 ‘트 황상’이 무역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있다. 다른 한편에선 ‘시 황제’가 장기 독재 체제를 구축한 여세를 몰아 강하게 되받아칠 기세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했던 올해 세계경제 전망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G2 대결의 충격에 대비하려면 다른 나라들이 뭉쳐야 한다. 유럽연합(EU)이 기력을 회복해 균형자 역할을 해주고, 일본이 주도하는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가 빨리 본 궤도에 오르는 게 중요하다. 한국 경제의 활로도 여기서 찾아야 한다.

조선비즈 논설주간(kcki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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