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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60년 전 한국 도운 미국 의사들처럼… 라오스에 기술 전수하는 서울대 의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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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욱-서울 프로젝트' 사업으로 9년간 라오스 의료인 60명 교육

한국 의료계 자립 도운 미국 본떠

지난달 14일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의 미타팝 병원. 수술용 침대와 조명, 심박 모니터뿐인 허름한 수술실에서 국내 인공관절 치환술의 대가인 김인권(67) 여수애양병원 명예원장과 한국 의료진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환자는 라오스 의사로부터 인공 고관절 삽입 수술을 받았던 분마(87)씨. 수술이 잘못돼 관절이 탈구된 상태였다.

의료진은 인공관절을 꺼낸 뒤 헛돌지 않도록 캡(뚜껑)을 씌웠다. 서너 시간 걸리는 수술이지만 김 원장 팀은 30여 분 만에 끝냈다. 이들은 나흘간 23차례 수술을 무료 집도했다. 류머티즘 관절염이 생겨 제대로 걸을 수 없었던 타노삭(19)군을 비롯해 18명이 혜택을 받았다.

조선일보

지난달 라오스 비엔티안의 미타팝병원에서 김인권(가운데) 여수애양병원 명예원장이 라오스 환자 인공 관절 수술을 앞두고 라오스 의사인 캄반 반살리시씨에게 수술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김경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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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의료 봉사는 아니었다. 이 병원 정형외과 의사 캄반 반살리시(47)씨가 모든 수술에 들어가 김 원장 팀 수술을 도왔다. 반살리시씨는 라오스 의료진에게 한국 의료 기술을 전수하는 '이종욱-서울 프로젝트'에 소속돼 있다. 그는 "태국 유학까지 했지만 고관절 수술은 해본 적이 없었다"며 "한국 의료 기술을 배우면 라오스 환자들에게 직접 수술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종욱-서울 프로젝트'는 서울대 의과대학이 2010년부터 진행해온 교육 사업이다. 서울대 의대 출신으로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재직 중 타계한 고(故) 이종욱 박사를 기려 이름 지었다. 매년 10명 안팎의 라오스 의료인을 선발해 서울대병원, 여수애양병원 등에서 연수할 기회를 준다. 서울대 교수들로부터 1년간 일대일 지도를 받는다. 비용은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을 통해 한국 측이 전액 부담한다.

다른 나라 의료인을 가르치는 일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김웅한 교수(흉부외과)는 "선진국 의사들이 짧은 일정으로 자기들끼리 수술하고 돌아가 버리면 현지 의료진 실력은 제자리걸음 하게 된다"며 "기술을 전파해야 계속 도움받아야 하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이종욱-서울 프로젝트'는 60여 년 전 한국이 미국에서 받은 혜택을 본뜬 것이다. 미네소타주립대는 1955년부터 7년간 1000만달러를 들여 서울대병원 의사 77명에게 의료 기술을 전수했다.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낸 권이혁(95) 전 서울대 총장, 유행성출혈열 원인인 한탄 바이러스를 세계 최초로 발견한 이호왕(90) 전 고려대 의대 교수 등 한국 의학의 중추인물들이 배출됐다.

'이종욱-서울 프로젝트'를 통해 배출된 라오스 의료인 60명도 라오스 의학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다. 2011년 박중신 교수(산부인과)에게 교육받은 산부인과 의사 핌마손 시리마노탐(57)씨는 라오스에서 임신부 초음파 진단의 최고 권위자가 됐다. 2016년 박준동 교수(소아과)에게 소아 중환자 관리 기술을 전수받은 윌라펀 파이마니(37)씨는 라오스 유일 어린이병원의 중환자실을 이끌고 있다. 그는 "연수를 통해 기관 내 삽관, 중심정맥관 삽입 등을 더 잘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프로젝트 운영위원장을 맡은 신희영 서울대 연구부총장(소아과)은 "한국 의료계가 미국의 도움으로 자립할 수 있었던 것처럼 라오스 의료계도 스스로 성장하게 돕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비엔티안(라오스)=김경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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