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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기자의 시각] 만델라의 추락하는 후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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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노석조 국제부 기자


팔레스타인 임시수도 라말라에는 넬슨 만델라 전(前)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동상이 있다. 많은 정치인과 인권 활동가가 이곳을 찾는다. 인종차별과 맞서 싸운 그의 정신을 계승하고 싶어서다. 미국 시카고도 그를 기리기 위해 '만델라 도로'를 두고 있다.

반미(反美) 이슬람국인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는 '만델라대로(大路)'가 있다. 만델라의 이름을 딴 다리·학교 같은 시설만 전 세계에 140개쯤 된다. 국경·종교·이념을 초월한 세계인의 '마디바(존경받는 어른이란 뜻의 남아공 부족어)'가 만델라이다.

만델라는 1990년대 초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을 철폐한 영웅이다. 그는 76세이던 1994년 남아공 최초의 평등선거에서 대통령에 뽑혔다. 하지만 그가 존경받는 진짜 이유는 '나쁜 정권'을 몰아내서도, 화려하게 집권해서도 아니다. 화해와 용서 그리고 하나 됨의 가치를 몸소 실천해서다.

백인 정권으로부터 반란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아 27년간 옥살이를 한 그는 1990년 출소하며 이렇게 말했다. "증오를 털어버리지 않고서는 자유의 몸이 된다 해도 영혼은 여전히 갇혀 있으리라는 걸 깨달았다." 그가 내민 화해의 손길에 남아공 인종 갈등의 벽은 무너져 내렸다.

1999년 만델라 퇴임 후 그와 반(反)인종차별 운동을 함께한 '오른팔' 타보 음베키가 후임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만델라 후광(後光)효과 덕택에 높은 지지율을 누렸던 음베키는 그러나 2008년 불명예 퇴진했다. 집권 여당 내 경쟁자인 제이컵 주마에 대한 수사를 부채질하는 등 검찰에 부당 개입한 게 문제가 됐다.

이듬해 대통령에 당선된 주마도 음베키처럼 '만델라의 동지'라는 경력을 내세웠다. 격식 없고 소탈한 모습에 서민층과 젊은이들이 그를 좋아했다. 하지만 주마 역시 지난달 임기를 다 못 채우고 불명예 퇴진했다. 성(性)폭행과 재산 비리 같은 각종 의혹이 불거진 탓이다.

권력을 잡은 만델라 후계자들의 몰락에 대해 전문가들은 "나라를 구한 세력이라는 도덕적 우월성과 영웅 심리에 도취해 절제력을 잃은 게 큰 원인"이라고 말한다. 그간의 고생에 대한 보상 심리로 자신들을 선민(選民)으로 여기며 자신의 흠결에 스스로 너그러워진 것도 이유로 꼽힌다.

2013년 만델라 서거(逝去)까지 그의 주치의였던 베자이 람라칸 박사는 회고록 '만델라의 마지막 세월'에서 "만델라는 마지막 6개월 극심한 투병에도 주위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고 겸손을 보였다"고 썼다. 주마에 이어 새 대통령이 된 시릴 라마포사는 다를 수 있을까. 남아공 정치인들의 불명예스러운 말로(末路)를 보노라면 권좌에 오를수록 더 몸을 낮추고 자기에게 엄격해야 한다는 진리를 새삼 절감한다.

[노석조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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