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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부동산 이중매매는 배임?…대법서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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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심 엇갈려…대법 전원합의체 22일 공개변론

# 백 모씨는 2010년 9월 토지거래구역으로 지정된 임야를 이 모씨에게 2억5000만원에 매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씨는 백씨에게 잔금 6500만원은 거래구역 지정 해제일(2013년 5월 23일) 이후 지급하고 소유권을 넘겨받기로 했다. 하지만 백씨는 2014년 6월 다른 사람에게 토지를 매도했다. 백씨는 배임죄가 인정돼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권 모씨는 2014년 8월 본인 소유 상가를 황 모씨 등에게 13억원에 매도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중도금으로 총 8억원을 받았다. 하지만 기존 임차인이 계약 연장을 요구하면서 둘 간의 잔금 지급이 미뤄졌다. 2015년 4월 권씨는 다른 사람에게 해당 상가를 15억원에 팔았다. 권씨는 배임 혐의에 대해 1심에서 유죄,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최근 부동산 이중매매 혐의를 두고 이렇게 하급심 판단이 엇갈리면서 관련 사건들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 오는 22일로 예정된 공개변론 이후 약 2개월이 지나면 확정판결이 이뤄진다.

기존 대법원 판례는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중도금을 받은 뒤 제3자에게 같은 부동산을 이중매매하면 배임죄로 처벌해왔다. 그러나 판사들 사이에 이견이 쌓여 있고 판례 변경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중매매를 개인 간 계약 불이행으로 보고 형사처벌 대신 민사소송으로 해결하자는 의견도 있다.

재판 쟁점은 매도인을 배임죄 성립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볼 수 있는지다. 앞서 권씨 사건에서 서울중앙지법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계약을 해제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면 매도인은 자기 사무 처리와 상대방 재산 보전에 협력해야 하는 타인 사무 처리 지위를 함께 지닌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울고법에선 "매도·매수인이 계약 내용을 이행하는 건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자기 사무에 해당한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지난해 9월 울산지법의 이중매매 판결도 서울고법과 비슷하다. 2012년 9월 A씨는 B씨와 신축 중인 건물 내 원룸 분양 계약을 체결했고, B씨는 계약금·중도금 총 1억7300만원을 A씨 부인 계좌로 보냈다. A씨는 잔금을 받기 전 원룸을 아내 명의로 등기하고 1억8000만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담당 판사는 "중도금을 받은 매도인에게 '자타 사무(자신의 사무이면서 타인의 사무)' 성격이 있다면 피고인에게 유리한 자신의 사무로만 취급해야 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부동산 매매가 계약, 계약금, 중도금, 잔금, 소유권이전등기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매도인이 우월한 지위를 바탕으로 매수인의 토지 구입을 일방적·의도적으로 방해하는 행위를 막을 형사처벌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여전하다.

류상규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악구지회장은 "배임죄 처벌 폐지는 부동산 거래 현장을 모르는 소리로 혼란만 부추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등기 이전에 협력하는 것을 매도인의 의무로 보고 배임죄를 인정하는 것은 지나친 법 적용"이라는 반론도 있다. 가정준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배임죄로 처벌하지 않으면 자연스레 계약 과정에서 이중매매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 규정 등 관련 조항이 삽입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배임죄가 폐지되면 고의 여부에 따라 매도인을 사기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지난해 2월 대법원에서 배임·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에게 사기죄만 유죄로 인정한 판결을 내놓은 바 있다.

[채종원 기자 / 부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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