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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현장에서]"사회안전망 강화해라"…정부에 작심발언한 이동걸 산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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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우리나라 구조조정 제도가 정교하게 잘 짜여 있지만 많은 경우 그 제도까지 가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사회 경제적 틀’ 때문입니다.”

이동걸(사진) KDB산업은행 회장이 지난 15일 오후 산업은행 본점 연수실에 나타났다. 기자를 대상으로 구조조정 제도 강의를 하던 중이었다. 이 회장은 30분 정도 예고 없던 즉석 간담회를 했다. 그는 정부에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이 회장이 작년 9월 취임한 이후 지난 반년간 산업은행이 추진한 기업 구조조정은 번번이 노동조합 반발 등에 부닥치고 있다. 한국GM, 금호타이어, STX조선해양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그 원인으로 한국 사회의 취약한 사회 안전망을 지목했다. 이 회장은 “노조의 반대를 이해할 수 있지 않겠냐”며 “회사가 문 닫고 (직장을) 나가면 죽음이란 표현을 쓰는 것은 밖이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업 급여나 재취업 지원 등 직장을 잃은 노동자 보호 장치가 취약하다 보니 노조도 인력 감축 등에 죽기 살기로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는 “구조조정은 제도적 틀 못지않게 사회 경제적 틀도 중요하다”며 “사회 전체적인 부분을 보완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정부에 요구했다.

이 회장이 이런 소신을 내비친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김수현 현 청와대 사회수석 등과 2015년 펴낸 책 ‘경국제민의 길’에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공통으로 흐르던 정책 이념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조화로운 발전”이라며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효율성은 극대화하되 그 폐해는 적극적으로 해결해 국민의 경제적 기본권은 보호하자는 것”이라고 썼다.

구조조정 분야에만 국한하면 경쟁력 잃은 기업은 시장에서 과감히 솎아내는 대신 노동자가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이 같은 기조를 이어받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성동조선해양에 정부가 지난 8년간 투입한 4조원이 다 어디로 간 것 같냐”며 “사업을 잘못해서 매년 적자를 내고 결국 자본금을 다 까먹은 거다. 이렇게 경쟁력 없는 회사에 계속 지원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책 라인의 고위 관계자도 “‘언 발에 오줌 누기’는 더는 안된다”라며 “해고 노동자 문제의 경우 전직(轉職) 지원 등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실직 노동자 지원 정책의 효과다.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에 따르면 고용노동부가 2016년 6월 조선업 특별 고용 지원 대책 발표 이후 편성한 예산 3583억원 중 작년 8월까지 실 집행한 예산은 1444억원(40.3%)에 그쳤다. 지난해 조선업 희망센터가 운영한 ‘취업성공패키지’ 서비스의 경우 이용 건수가 2552건이었지만, 실제 취업자는 248명(9.7%)에 불과했다. 정책의 양과 질이 모두 미흡한 것이다. 정부가 최근 한국GM 공장 폐쇄, 성동조선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등이 결정된 경남 통영과 전북 군산을 대상으로 내놓은 고용 지원 방안도 종전 대책의 ‘재탕 삼탕’이라고 노동계는 비판한다.

구조조정 기업의 정규직 노조가 직원 복리후생 축소 등에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도 정부 복지 정책이 워낙 미흡한 탓에 사내 복지에 과도하게 의존하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 두터운 사회 복지가 기업 생산성 제고 등 경제 개혁의 전제 조건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 사회 지출 비중은 2016년 현재 10.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21%에 크게 못 미친다.

정부가 이처럼 빈약한 안전망을 대폭 보완해야 법정관리 등 기업 구조조정도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 이 회장 주장이다. 그는 19일 금호타이어 노조와 직접 만나 대화하기로 했다. 중국 기업으로의 회사 매각에 강력히 반대하는 노조를 설득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국책은행에 구조조정 책임을 떠넘기기만 할 것이 아니라 구조조정 수장의 고언(苦言)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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