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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미국 판로 막힐라"…美총기 규제에 전전긍긍하는 유럽 총기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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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미국에서 한 시민이 총을 차고 걸어가는 모습. /사진=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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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108]미국의 총기 규제 움직임으로 유럽 총기업자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유럽은 '총기 청정국'으로 불리지만 미국에 대해서는 총기 수출을 통해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유럽은 미국에 매년 약 350만정의 총기를 수출하고 있다. 미국이 한 해 500만정(2016년 기준)의 총기를 수입하는 것을 감안하면 미국의 수입 총기시장에서 유럽의 점유율이 70%에 달하는 셈이다. 미국 전체 총기시장을 놓고 봐도 점유율이 약 20%에 달할 정도로 미국은 유럽 총기업체의 주 시장 중 하나다.

이코노미스트는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느슨한 총기 규제를 손가락질하지만 사실 유럽은 이로 인해 이득을 얻고 있다"며 "미국의 총기 규제가 강화되면 유럽 총기업계가 미국 다음으로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영국 등 유럽 국가들은 총기 소유를 원칙적으로 허용하나 발급 요건이 까다로워 '총기 청정국'으로 통한다.

유럽의 한 총기업체 관계자는 "미국 정부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총기 규제가 강화되면 피해가 불가피해 대책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지난달 14일 플로리다 한 고교에서 17명의 목숨을 빼앗은 총기참사 사건을 계기로 총기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총기 소유를 옹호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조차도 최근 규제 강화 입장으로 돌아섰다.

이에 따라 미국에 총기 수출을 하며 쏠쏠한 수입을 올려온 유럽 총기업체들은 큰 타격이 예상된다. 오스트리아 기업인 글록은 미국에 권총 130만정을 수출한다. 이는 유럽 대미 총기 수출의 30%에 이르는 규모다. 이탈리아 업체 베레타는 매출의 절반을 미국 시장에서 올린다. 독일 제조사인 시그사우어의 미국 내 권총시장 점유율은 12.3%다. 유럽산 총은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정교함으로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 업체는 최근 미국 시장 확대에 나섰던 터라 속쓰림이 더하다. 베레타는 2016년 미국 테네시주 갤러틴에 공장을 세우고 현지 생산에 들어갔고, 시그사우어는 이에 앞서 2014년 뉴햄프셔주에 대규모 공장을 추가로 증설했다. 글록도 조지아주에 공장을 두고 있으며, 벨기에 업체 파브리크 나시오날 드 에르스탈도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생산시설을 갖고 있다.

유럽 총기업체들은 로비에 있어서도 미국 업체 못지않게 열정을 보이고 있다. 글록은 2016년 미국 최대 총기 로비단체인 미국총기협회(NRA)에 10만달러를 기부했다. 그만큼 이해관계가 깊다는 방증이다. 베레타는 지금까지 총 100만달러를 NRA에 기부했다. NRA는 베레타에 상위 기부자를 상징하는 '자유의 고리(ring of freedom)' 칭호를 부여했다.

유럽 한 업체는 총기를 마케팅하는 과정에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독일 헤클러&코흐 미국 법인은 지난달 14일 플로리다 총기 참사가 발생한 직후 자사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총알 여러 개를 이어 하트 모양을 만든 사진을 올렸다. 하트 한가운데는 권총이 있었고, '헤클러&코흐는 사랑이다'라는 사진설명을 달았다. 그러자 총기 사건의 희생자들을 조롱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헤클러&코흐는 성명을 통해 "미국 법인의 실수에 사과를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한편 유럽연합(EU)은 최근 잇단 테러로 총기 규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4월 EU는 가장 위험한 총기로 알려진 반자동 총기의 민간인 소유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도록 규정했다. 또 총기의 모든 핵심 부품에 일련번호를 부여하도록 규정한 데 이어 개조한 총기의 등록도 의무화했다. 총기로 인한 인구 10만명당 사망자 수는 미국이 10.54명으로 오스트리아(2.9명), 프랑스(2.65명), 독일(1.01명) 등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박의명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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