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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사설] 미투 가해자 가족에게까지 쏟아지는 어긋난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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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확산되면서 성추행·성폭행 의혹을 받고 있는 가해자 가족에 대한 공격이 도를 넘고 있다. 일부 누리꾼들은 가해자와 관련된 기사에 가족을 비난하는 악성 댓글을 달거나 가족 신상을 털어 공개하는 등 무차별적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유명 정치인이나 배우 의 성추행 의혹에 실망하고 배신감을 느끼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까지 욕설을 퍼붓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부도덕에 대한 단죄가 아니라 또 다른 폭력이다.

목숨을 끊은 탤런트 조민기 씨가 청주대 교수로 재직하며 제자들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후 일부 누리꾼들은 조씨 딸을 겨냥해 "○○○도 미국 교수에게 똑같이 당할 것이다" "너의 아빠가 그런 사람인 걸 알고 있었느냐" 등의 댓글을 달았다. 성폭행 의혹이 제기된 배우 조재현 씨 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도 "죄인처럼 봉사하면서 네 아빠가 짓밟은 피해자들한테 사죄하면서 살아라"는 비난이 들끓었고,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대해서도 "네 가족들도 똑같이 당하리라"는 악의적 비난 글이 달렸다.

가해자의 잘못을 가족들에게 "같이 책임지라"며 죄를 묻는 것은 이미 골동품이 된 연좌제의 부활이나 다름없다. 이들이 아무리 추잡하고 비도덕적인 행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가족이 무슨 죄가 있나. 더 많이 충격받고 상처받은 이들은 다름 아닌 가해자의 가족들일 것이다. 이들을 표적 삼아 집단적으로 조롱하고 비난하는 것은 표독스럽고 잔인한 행동이다. 특히 가해자의 부인과 딸도 같은 피해를 당해봐야 한다는 식으로 유독 여성을 걸고넘어지는 것은 비판을 가장한 성희롱이자 여성 혐오다.

이처럼 가해 당사자도 아닌 가족에 대한 인신공격과 마녀사냥은 피해 여성들의 용기 있는 고백으로 어렵사리 시작된 미투 운동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 미투 촉발로 대한민국은 가부장주의, 남성우월주의 등 구시대적 패러다임을 탈피해 남성과 여성의 차별 없는 세상을 모색하는 기회를 맞고 있다. 가해자 가족들에 대한 낙인찍기식 연좌제는 미투 운동 흐름에 되레 방해가 된다. 지금 한국 사회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성적인 비판이지 '어긋난 분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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