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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1 (금)

[아시아초대석]김경수 한국경제학회장 "기업 구조조정 제 역할 못하는 産銀, 정부 입김 너무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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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銀 태생적 한계 있지만 대리인 역할 그쳐

아시아경제

김경수 한국경제학회장 겸 성균관대학교 교수가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다산경제관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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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간 대리인 역할 이어지며 역할 축소·역량 약화
정부 반복적 추경카드 근복적 해결대책 안돼
GM문제 독자적 목소리 못내
[인터뷰=조영주 경제부장] "정부가 부여한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써야하는 지 산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현행법상 없다."

김경수 신임 한국경제학회장(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은 최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KDB산업은행의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이유를 이렇게 지적했다. 김 학회장은 2016년 8월 KDB산업은행에서 혁신위원회의 위원장을 지냈다. 그가 위원회에서 활동할 당시에도 산은의 역할론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던 주제였다. 김 학회장은 "현행법상 KDB산업은행의 주인은 정부고 산은은 정부의 대리인에 불과하다"며 "주대리인 문제가 수십년 동안 이어지면서 산은 스스로 역량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국책은행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정부의 입김이 강하다 보니 산은의 역할이 과도하게 축소됐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이런 식의 주대리인 문제가 수십년 동안 이어지면서 산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이 떨어졌다고 봤다.

산은이 2대 주주인 한국GM 문제만 해도 그렇다. 김 회장은 "산은이 한국GM과 좋은 딜을 성사시키려면 정책 수행 방안에서 산은이 어느 정도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야 하고 이렇게 해야 산은에도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며 "정부 명령대로만 하면 산은 역량도 뒤처지고 '봉급도 많이 받는데 이것밖에 못 하냐'는 지적에 위축만 된다"고 설명했다. 정부 정책에 맞장구치기 바쁜 산은에도 쓴소리를 했다. 그는 "산은 스스로 정책 목표를 수행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고 이를 정부와 협의해야 한다"며 "산은이 GM 딜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수조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기업 구조조정을 지연시키거나 혹은 되살리는 정부의 구조조정 방식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정부는 지난 8일 8년간 수조 원의 공적자금 투입으로 연명해 온 성동조선해양의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STX조선해양의 구조조정 압박 수위도 높였다.

정부는 그동안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미뤄왔다. 대신 채권단은 신규자금 2조7000억원, 선수금환급보증(RG) 4조5000억원, 출자전환 1조5000억원 등 막대한 금융 지원을 계속해 왔다. 대우조선해양도 마찬가지다. 대우조선해양은 구조조정을 적기에 못 했고 최근 2년 동안 7조원에 가까운 공적자금을 쏟아부어야 했다.

김 학회장은 정부가 반복적으로 추가경정예산(추경) 카드를 꺼내는 데에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미국은 버락 오바마 정부 때까지 추경을 36번이나 진행했고 그 결과 재정절벽이 왔다"며 "청년실업, 기업 구조조정 등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지만 추경이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될 수 없고 결국 노동유연성이 담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제통화기금(IMF)도 노동유연성을 지적한 바 있다"고 소개했다. IMF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노동시장에서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유연성 확보, 실업자에 대한 강하고 포용적인 안전망 정책과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을 주문한 바 있다.

김 학회장은 "최근 윌스트리트저널(WSJ)에 소개된 기사를 보면 독일 노조는 위기가 오면 고용안정 대신 임금을 포기했다. 임금과 고용안정, 두 가지 모두를 만족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도 기업이 어려워지면 자금부터 투입하는 행태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구조조정이 더딘 이유로는 정부의 늦은 의사결정뿐 아니라 경직적인 경제구조를 또 다른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기업 구조조정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고용안정이라는 현실론이 당위론을 항상 이겼다"면서 "현실론이 항상 승리한 이유는 저성장 시대에 진입하면서 고용이 사회적 문제가 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고용문제는 결국 수출 중심의 우리 경제구조와도 직결된다. 그는 "구조적 실업을 줄이려면 서비스업 등 다른 산업에서 고용을 받쳐줘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이러한 대안이 전무하다"면서 "수출 중심의 혜택, 중소기업 대상 기술금융 등에 치중해 서비스산업 등 다른 산업 육성을 소홀히 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결국 한정된 일자리에서 근로자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려고 하다 보니 위기 산업 퇴출, 구조조정 등은 노사갈등을 넘어 사회적 문제로 증폭되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다.

김 학회장은 구조조정 지연으로 산업의 세대교체가 늦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통상 실질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정체되거나 떨어지면 서비스업 비중이 치고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 같은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 "선진국이 걸었던 산업 구조조정의 전환이 우리나라에서는 나타나고 있지 않다"며 "성과가 확실히 눈에 보이는 수출로만 눈을 돌렸고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를 50년 가까이 끌고 왔다"고 풀이했다.

그는 시장논리대로 구조조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진 예로 '우버'를 들었다. 우버는 최근 미국 뉴욕에 택배회사인 '우버 러시'를 만들었다. 우버가 소비자와의 직거래로 시장을 차츰 잠식하면서 뉴욕에 사는 교민들이 운영하는 세탁업이 거의 폐업하거나 전업했다. 그는 "우리 정부라면 이를 과연 수용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며 "학계연구에 따르면 시장의 진입과 퇴출이 자유로울 때 서비스산업의 생산성은 증가한다. 이 인과관계에 비추어 볼 때 대형마트의 주말휴무 등도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제"라고 꼬집었다.

우리 경제상황에 대해선 "충격이 오면 극복하는 복원력이 약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우리나라 국채가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투자대상이 되고 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들이 등장하는 등 일부 경제선진화가 이루어진 것도 사실이지만, 2000년부터 성장기여도를 보면 성장률은 떨어지고 소비ㆍ기업투자가 성장에 기여하는 비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저성장추세가 뚜렷이 일어나고 있다"며 "그 결과 상대적으로 수출부문만 커지고 국가채무는 2007년 17%에서 현재 40% 가까이 늘었다"고 우려했다.

수출주도 성장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성장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면서 실질환율을 경쟁력 있게 만드는 방식의 수출주도형 성장 모델은 죽은 모델"이라며 "이걸 대체할 수 있는 성장모형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위기가 오고 성장의 파이가 줄어들어 갈등이 일어나면서 포용적 성장이 주목받고 있지만 포용적 성장을 지속하려면 소득→소비→성장 연결고리가 잘 가동될 것인가가 문제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정리=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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