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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이동혁의 풀꽃나무이야기] 제주도에서 전하는 봄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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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만큼 더디 오는 봄을 찾아 제주도로 마중 나가보았습니다. 같은 나라지만 다른 땅, 제주도의 봄은 이미 시작된 지 오래입니다. 나름 가볍게 입고 간 옷차림이건만 한 겹만 남기고 훌훌 벗겨내는 따뜻함을 남녘의 햇살이 선사합니다. 그 햇살에 못 이겨 피어난 꽃들이 여기저기서 인사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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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서귀포의 한 호텔 앞.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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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는 달콤한 향기를 봄바람에 실어 보냅니다. 자기애의 상징인 수선화는 품종에 따라 색과 모양이 조금씩 다른데, 보통은 금잔은대(金盞銀臺)라 불리는 것을 수선화로 여기는 듯합니다. 금으로 된 잔과 은으로 된 받침대라지만 술을 부었다간 죄다 쏟아질 것 같습니다. 꽃이 약간 아래를 향해 피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 모습으로 인해 수선화가 그리스 신화의 나르키소스(Narcissus) 이야기에 등장하게 됐을 겁니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물속에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가 있던 자리에서 피어난 꽃이라는 이야기 말입니다. 아래를 향해 살짝 수그린 채 핀 모습이 정말로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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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는 꽃이 살짝 아래를 향해 수그린 채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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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는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인 식물로, 우리나라에는 자생지가 없습니다. 간혹 제주도의 안덕면이라든가 전남 여수시 거문도에 자생지가 있다는 말이 있으나 그건 자생지의 개념을 잘못 안 분들의 주장입니다. 외국에서 들여온 식물이 기후가 맞는 지역에서 발붙이고 사는 것일 뿐이므로 우리나라 입장에서 수선화는 외래식물이고 국내에 수선화의 자생지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광대나물은 아마 수선화보다 일찍 피어났을 겁니다. 줄기에 잎자루 없이 붙어 달리는 잎의 모습이 관대를 두른 듯하다 해서 관대나물이라고 한 것을 변형시킨 이름입니다. 잎이 코딱지처럼 생겼다 해서 전라도에서는 ‘코딱지나물’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잎의 모양보다는 벌어지지 않는 꽃인 폐쇄화(닫힌꽃)가 달리는 모습에서 코딱지나물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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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나물은 코딱지나물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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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코딱지보다는 큰 편입니다. 양지바른 풀밭이나 길가에서 흔히 자라는 잡초라 눈길을 주는 이가 많지 않습니다. 공터나 빈 밭이 많은 제주도에서는 엄청나게 무리 지어 자라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매실나무도 가지마다 꽃이 활짝 피어 달콤한 향기로 벌들을 불러 모읍니다. 어떤 분은 매화를 왜 매실나무 꽃으로 부르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꽃만 보면 분명 매화가 맞습니다. 하지만 정식 명칭은 매실나무입니다. 꽃의 이름이 아니라 열매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배가 열리는 나무를 이화(梨花)라고 하지 않고 배나무라고 하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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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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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국어시간 때 배웠던 이육사 시인의 ‘광야(廣野)’에 매화가 나옵니다.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라는 구절 말입니다. 여기서 매화에 밑줄 쫙 긋고 꽃 중에서 가장 먼저 피므로 꽃의 우두머리라는 뜻에서 화괴(花魁)라고 한다는 것을 적어 넣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정말로 매화가 꽃 중에서 가장 먼저 피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눈 속에 피는 설중매(雪中梅)만 떠올려도 매화가 가장 먼저 피는 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사실 매화보다 먼저 피는 것은 동백나무입니다. 특히 제주도를 비롯한 남부지방의 동백나무는 빠르면 지난해의 늦가을부터 하나둘 피기 시작해서 이듬해 4월까지도 피고 집니다. 그렇게 두 해에 걸쳐 제 멋대로 피다 보니 동백나무에게 ‘가장 먼저’라는 타이틀을 얹어주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매화를 그 해에 가장 먼저 피는 꽃으로 여기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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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는 거의 두 해에 걸쳐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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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주도의 동백나무에는 팽이처럼 생긴 것이 달려 있습니다. 그것은 열매가 벌어져 씨를 떨어뜨리고 남은 껍질입니다. 손가락으로 잡고 돌리면 정말로 팽이처럼 돌아갑니다. 얼마 못 가서 부러지지만 말입니다. 대여섯 번 놀고 나면 망가지는 자연 장난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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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이처럼 생긴 동백나무 열매껍질은 자연 장난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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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는 기본적으로 꽃이 반쯤 벌어지고 꽃잎이 5~7개 정도 달립니다. 그런데 제주도를 비롯한 남부지방에서는 꽃잎이 많고 뒤로 활짝 벌어지고 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애기동백의 원예품종으로, 입한춘(立寒椿)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꽃이 풍성하고 아름다워 많이 심다 보니 그게 진짜 동백나무인 줄 아는 분이 많습니다. 동백나무의 수분매개자인 동박새도 입한춘에 곧잘 놀러옵니다. 동백꽃이 됐건 입한춘이 됐건 꿀만 있으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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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동백의 원예품종인 ‘입한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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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흰 눈이 녹지 않은 한라산을 배경으로 주황빛 열매를 달고 있는 것은 하귤입니다. 가로수 역할을 하는 귤나무 종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워낙 신맛이 강해 열매를 생식하긴 어렵고 관상용으로 심어 기르는데 간혹 시장에서 팔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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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귤은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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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금귤)도 드물게 보입니다. 금감은 일본어 킨칸(キンカン)에서 유래되어 ‘낑깡’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잘못된 표기입니다. 알고 보면 감귤도 엉터리 이름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발음 ‘미깡’을 한자로 적은 것이 ‘밀감(蜜柑)’이고 여기에서 ‘감귤’이라는 국적 불명의 이름이 생겨난 것입니다. 귤은 그냥 귤일 뿐이지 감귤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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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은 흔히 ‘낑깡’이라고 하지만 잘못된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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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커피 가게의 화단에는 팬지가 잔뜩 피어 봄손님을 맞습니다. 일부러 심은 키 작은 꽃이긴 해도 추운 내륙에서 온 손님들의 눈에는 화사하기 그지없습니다. 중부지방에서 팬지를 보려면 빨라도 3월 말은 돼야 할 텐데 제주도에서는 2월 말만 돼도 활짝 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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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단에 핀 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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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렇다 보니 내륙의 벌에 비해 제주도의 벌들은 훨씬 더 이른 봄부터 부지런을 떨어야 할 겁니다. 그게 다 좋은 곳에서 사는 죄(?)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곳에서 살지 못하는 우리들은 그리움만 넓혀놓고 제주도 비행기 표 값을 저울질하며 갈까 말까 망설입니다.

이런 소리를 제주도 분들이 들으면 뭐라고 하겠죠? 그분들은 설악산이나 울릉도 한 번 가보기도 어렵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하하. 그렇습니다. 멀리 있으면 바로 거기가 천국이고 이상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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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본 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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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혁 풀꽃나무칼럼니스트(freebowl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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