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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신율의 정치 읽기] 다급한 김정은과 초강경 제재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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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2018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에 참석한 이방카 트럼프 미국 백악관 보좌관(사진 왼쪽)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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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이 평화올림픽으로 치러졌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평창올림픽이 한반도 평화의 시발점이 될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문재인 정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북한이 과연 대화에 나설 것인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번 올림픽을 한반도 평화의 계기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은 사실이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돼야 할 것이다. 논란은 있었지만, 남북 단일팀 구성이 올림픽을 평화적으로 치르는 데 기여했다는 차원에서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문재인정부가 주장하던 ‘당사자 우선 원칙’이 올림픽 마지막에 또 한 번 깨졌다. 김영철의 방남 때문이다. 잘 알려지다시피 김영철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의 주범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추정’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정부 주장처럼 김영철이 주범이라고 특정할 구체적인 물증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이라는 독재정권의 특수성, 그리고 북한의 폐쇄성을 감안하면 ‘추정’이더라도 김영철이 주범이라고 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듯하다.

이런 주범이 올림픽 폐막식 사절단으로 대한민국에 내려오는 데 있어, 정부는 최소한 천안함 폭침 때 희생된 장병들 유가족과 생존 병사들에게 언론보다 먼저 알렸어야 했다. ‘언론보다 먼저’ 알렸어야 하는 이유는, 남북관계 특성상 북한 통보를 받자마자 유족과 생존 장병들에게 알리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보가 좀 늦을 수는 있다. 그럼에도 최소한 천안함 유족들과 생존 병사들이 언론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하게 만들어서는 안 됐다. 그것이 ‘당사자 우선 원칙’이 아닐까 싶다. 설령 유가족이 김영철 방문을 뉴스를 보고 알았다 해도, 이후 유족들을 찾아가 늦게나마 이해를 구했어야 했다.

무리수를 둬가면서 김영철의 방문을 받아들였는데 과연 그만큼의 대화 결과는 있었을까. 물론 김영철이 가진 직책의 특성상 그 결과를 낱낱이 밝히기 힘들 수 있다. 김영철은 북한 통일전선부장으로 있는데, 통일전선부는 우리로 치면 통일부와 국정원을 합한 것과 같은 부서다. 대남 전략을 수립하고 우리 정보를 수집하는 게 주요 업무다. 때문에 이들의 말이 모두 공개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단편적으로 흘러나온 것을 종합해보면, 북한이 미국과 대화할 의지가 있으며 우리의 비핵화 문제 제기도 그냥 조용히 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얼마나 다급한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그동안은 우리가 핵문제를 꺼낼 때, 북한은 아예 무시하거나 핵문제는 미국과 대화할 사안이라며 우리가 말조차 꺼내는 것을 거부했다. 북한 태도가 달라진 이유는 북한이 우리와 대화하겠다는 의지, 혹은 우리의 대북정책 때문이 아니라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제재 때문에 숨을 못 쉴 지경이 됐기 때문이다.

지금 이런 북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다.

북한이 미국과 대화할 생각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부터 생각해보자. 북한이 미국과 대화를 진정으로 원하고, 그 전제조건이 없다면 지난번 김여정이 내려왔을 때 미국과 대화를 했어야 했다. 김여정이 왔을 때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를 제의했다고 한다.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고 나서 북한은 회담 시작 두 시간 전에 스스로 대화 제의를 깼다. 그때는 왜 취소하고 이제는 왜 다시 대화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인가. 불과 며칠 사이에 뭐가 그렇게 달라졌다고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인가. 평창올림픽 개막식 때 북한이 자신들이 제의한 대화를 스스로 취소한 이유는, 펜스 부통령의 언행이 자신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매우 강경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북한은 자신들이 대화 제의를 하면 미국이 좀 ‘부드러워’질 것을 기대했지만, 미국이 전혀 그럴 기미를 보이지 않자 대화를 깼다는 것이다.

김영철이 미북 대화를 주장하는 시점은 미국이 오히려 더 강경한 대북제재 조치를 발표한 직후다. 그때는 취소하고 지금은 다시 대화를 주장하는 속내가 무엇인지 더욱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를 그토록 원했다면, 김영철보다는 리용호 북한 외무상을 보냈어야 했다. 아무리 김영철이 리용호보다 서열이 높고 실권이 많다 하더라도 김용철은 미국과 EU 그리고 우리나라가 제재 대상으로 꼽고 있는 인물이고, 그뿐 아니라 미국이 북한을 테러 지원국으로 취급하는 주요 이유가 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런 사람을 미국이 만나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는 몰상식한 일이다.

저간의 사정을 종합하면, 대남통인 김영철을 보낸 이유는 미북 대화가 당분간 어려워 보이기 때문에 혹은 미국의 강경 대응 기미가 갈수록 거세지기 때문에, 일단 우리를 통해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동시에 자신들의 숨통을 조금이라도 트이게 만들려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즉, 북한은 미북회담 용의가 있다는 말로 우리의 체면을 세워주고, 동시에 우리를 통해 자신들의 숨통이 트일 수 있는 길을 모색하려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과의 대화 의지는 일종의 대외적으로 보여주기용이다.

문제는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데 있다. 미국이 요지부동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한에 강경한 이유는 당연히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을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로 바라본다. 미국은 또 북한을 일종의 본보기로 생각하는 것 같다. 미국은 중동 국가들을 비롯한 다양한 조직에 의해 테러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시범 케이스가 필요하고, 그 타깃이 바로 북한이라는 논리다. 다시 말해 미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어떤 세력도 북한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보여주려 한다는 말이다.

미 국무부 내에서 대화론자로 알려진 조셉 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사임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조셉 윤 대표가 사임함으로써 미국 국무부 내에는 대북 강경파가 주류를 이루게 됐는데, 이로써 미국의 대북 무력 사용 가능성은 높아졌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면 우리로서는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는 북한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무조건적으로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고 백기 투항하는 것이다.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김영철에게 미국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고, 제대로 전달됐다면 그것이 바로 성과다. 미국의 강경 발언이 단순한 엄포가 아님을 북한에 알려주는 것은 작금의 상황에서는 우리의 최선이다.

지금 한반도의 위기 정도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그 위기가 가장 고조되는 순간은 한미연합훈련이 시작되는 순간일 것이다. 여기에 북한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위기 수준이 결정될 터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북한이 현명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대상은 중국이다. 중국도 과거처럼 북한을 감싸고 돌기 힘들 것이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의 장기 집권을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외부에 신경을 쓸 여력이 많지 않다. 또 중국 입장에서는 김씨 왕조가 아니더라도 미국과 일본에 대항하는 완충지대만 있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김씨 왕조를 지킬 이유가 없다. 그래서 중국이 오히려 북한 김씨 왕조의 적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 판단하면, 북한은 과거에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 처했다. 북한이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현상 유지(status quo)’가 아닌 ‘현상 타파’를 추구했기 때문에 초래된 것이다. 북한은 스스로 초래한 상황 속에서 당황하고 있는 셈이다. 정말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이제 그 어리석음의 대가가 과연 무엇인지를 지켜봐야 한다. 북한이 조금이라도 현명하다면, 지금이라도 핵과 미사일 모두를 동결이 아닌 포기를 해야 한다. 그것만이 한반도 위기를 가라앉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48호 (2018.03.07~2018.03.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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